21일 청량리역에서 열린 서울시 ‘어르신 대상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예방교육’ 에 참여한 한 참가자가 헤드셋을 쓰고 보이스피싱범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고희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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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범들은 상황을 다급하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이런 전화를 받으면 너무 성급하게 하지 마시고…” 강사의 말을 듣고 있던 어르신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 어르신이 “나는 작년에 보이스피싱으로 40만원 뜯겼어”라고 말했다. 누군가 옆에서 “자식들이 휴대전화 액정이 깨졌다고 해도 계좌번호를 불러주면 안 된다”라며 거들었다.
21일 오후 서울 청량리역 맞이방에서 열린 ‘어르신 대상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예방교육’ 현장. 최근 50대 이상 중·장년층을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가 늘면서 서울시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함께 만든 자리다.
교육은 50대 이상 중·장년이라면 사전 신청 없이 누구나 현장에서 바로 참여할 수 있다. 강사가 ‘금융감독원 보이스피싱 사이버 체험관’을 태블릿으로 연결해 참가자들에게 피해 사례 등을 소개하고 유의사항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교육이 진행됐다. 교육시간은 1인당 15분 가량이다.
역사를 지나가는 길에 ‘보이스피싱 교육’이라 적힌 팻말을 보고 들렀다는 최동례씨(75)는 “모르는 번호인데 우리 막내딸 이름으로 휴대전화 액정이 깨졌다고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며 “법원, 검찰이라고 하는 데서도 전화가 온 적이 있는데 사기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이 두근댔다”고 말했다.
강사가 “모르는 번호로 온 문자에 URL(웹 사이트 주소)은 절대 눌러서는 안 된다”고 말하자, 최씨는 “부고나 청첩장 문자도 무서워서 안 눌러 본다”고 했다. 강사는 “사기범들이 어떤 시나리오로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당황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교육에 참여한 이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비슷한 전화나 문자를 몇 번은 받아봤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박순영씨(74)는 “부동산이라는 데서 전화가 와서 땅을 감정가보다 높게 살 테니, 감정사에게 줄 돈을 먼저 보내라고 했다”며 “딸에게 물어봤더니 사기라고 해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박씨의 말에 옆에 있던 여성이 “계좌번호를 달라거나, 돈을 보내라는 얘기엔 절대 응해주면 안된다”고 맞장구를 쳤다.
금융감독원 2023년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 분석에 따르면, 2023년 보이스피싱 피해액 1931억원 중 60대 이상 704억원(36.4%), 50대 560억원(29%), 40대 249억원(12.9%), 20대 이하 231억 원(12%), 30대 188억 원(9.7%) 순으로 50대 이상이 65.4%를 차지했다. 1인당 피해액도 1710만원으로 2022년(1130만원)과 비교하면 51%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정보통신(IT)기술이 실생활에 사용되고 있지만, 노인들은 IT 기기 활용에 익숙하지 않고 금융 사기 수법에 대한 정보와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쉽게 피해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현장 교육을 들은 어르신들 대부분 IT 기기 활용에 대해 “자식들에게 물어본다”면서도 “자녀들이 바빠 계속 연락할 수 없으니, 이 같은 교육이 유익하다”고 답했다.
이날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 모두 74명이 교육에 참여했다. 22일에도 오후 2~5시 사이 같은 장소에서 진행된다.
김경미 서울시 공정경제과장은 “앞으로도 서울시는 효과적으로 불법 금융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세대별 특성을 고려한 실질적인 교육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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