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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이슈 헌정사 첫 판사 탄핵소추

“탄핵으로 정권 바뀌니 자주 쓰고 싶나” 현직 부장판사, 법관 탄핵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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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 김 부장판사는 2월 법원 인사를 앞두고 사의를 표명했다./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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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부장판사가 여권(與圈)이 추진하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에 대해 “법원이 여권에게만 유리한 판결을 했어도 법관탄핵을 추진했을까”라며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이 바뀌니 탄핵이라는 칼이 아주 유용하고 잘 드는 칼이라 자주 쓰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것인가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고 지적했다.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31일 본인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같이 주장하며 “관료로 임명되고 정치와 가장 먼 영역에 있는 법원에까지 탄핵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이제 이것을 아주 편하게 얼마든지 쓰겠다는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렇게 탄핵이 정치적으로 남용되기 시작하면 앞으로 국민의 지지를 잃은 대통령은 언제든 탄핵의 칼날을 두려워하며 임기를 마쳐야 하고, 법관들도 탄핵의 공포를 품고 눈치 보며 재판과 업무에 임해야 한다”며 “법은 존재하지 않고, 그런 정치만이 난무하는 대한민국을 정말 원하는지 반문하고 싶다”고 했다.

◇“이유 부분 방론 근거로 탄핵 추진은 수긍 어려워”

김태규 부장판사는 이날 ‘법원이 여권에게만 유리한 판결을 했어도 법관탄핵을 추진했을까 하는 궁금증’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이같이 밝혔다.

그는 우선 임 부장판사의 1심 무죄 선고와 관련해 “비록 항소심 계속 중이지만 이미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에 대하여 탄핵을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서로 상응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탄핵을 추진하는 세력들은 제1심 판결문에 나와 있는 헌법 위반이라는 표현에 천착하는 것으로 보이나 판결문이라는 것은 주문에 모든 무게가 실리고, 이유라는 것은 주문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유 부분에 방론으로 논의된 것을 근거로 해서 탄핵을 추진한다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

임 부장판사의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면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지적한 바 있다. 김 부장판사는 이에 대해 “양보해서 헌법 위반이라고 하니 그렇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 가정해도 탄핵을 논하는 것은 여전히 과하다”고 반박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을 예를 들며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서 노 대통령의 행위가 위법하지 않았다고 한 것이 아니다. 위법하지만 탄핵에 이를 정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탄핵을 기각한 것”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탄핵으로 판사 압박하는 것이 훨씬 더 무섭다”

김 부장판사는 “탄핵대상 판사가 다른 판사의 재판에 간섭했다고 하지만 그것도 잘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시민들이 법관 혼자서 골방에 박혀서 한 판단을 더 신뢰할지, 법관이 리서치와 다른 동료 법관들의 의견을 구해 한 판단을 더 신뢰할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안다”고 했다. 이어서 “더군다나 문제가 된 해당 사건에서는 이미 사건의 담당 재판부가 결론을 다 도출하고 있었고, 담당 재판장도 전혀 심리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판사) 선배가 판결이 오독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조언하는 것이 법관의 독립에 침해가 되겠나, 국회의원들의 판사를 탄핵한다고 하는 것이 법관의 독립에 침해가 되겠나”라며 “당연히 탄핵이라는 법적 수단으로 판사를 압박하는 것이 훨씬 더 무서울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왜 법관에게 두려움을 심으려 하는가”

김 부장판사는 여권의 탄핵 추진 배경에 대해서는 최근 정권에 불리한 방향으로 선고된 재판을 언급했다. 그는 “만약에 최근에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은 정경심 교수의 판결, 윤석열 검찰총장의 두 차례에 걸친 집행정지신청의 인용,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판결문에 박 시장의 성추행 사실을 적시, 최강욱 대표의 유죄선고 등과 같은 사건에서 모두 범여권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였더라면 그때도 과연 여권은 법관탄핵을 얘기하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다”고 했다.

[이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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