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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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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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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주일우의 뒹굴뒹굴 만화 (5) 아우의 남편

한겨레



오래전 이야기다. 몇달간 다른 나라에 가서 공부를 할 기회가 생겼다. 내심 바라던 일이라서 냉큼 가기로 했지만 월세로 살던 집이 걱정이었다. 월세가 제법 되었고 집을 돌봐줄 사람도 있으면 좋으리라 생각해서 짧은 기간 살 사람을 구했다. 광고를 보고 미국인 청년이 집을 보러 왔다. 구석구석 꼼꼼하게 살피던 이 친구가 자기 파트너와 함께 다시 보고 결정해도 되겠냐고 했다. 그래야 마땅한 일이라서 약속을 했고 며칠 후 그는 파트너와 함께 왔다. 함께 온 파트너는 처음에 왔던 친구보다 더 건장한 청년. 동성 부부였다. 그때만 해도 이런 커플을 만나볼 기회가 없었던 나는 짐짓 당황했다. 경험도 없었고 편견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 집에서 석달을 살았고, 나는 돌아와서 깜짝 놀랐다. 게으른 내가 들여다본 적도 없는 구석구석까지 닦아서 집에 광을 내놓았다. 늘 둘이서 다정한 사진을 담아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곤 했다.

여자들 사이에도 형, 아우로 부르기도 하지만 아우는 주로 남자의 남동생을 이르는 말이므로 <아우의 남편>이라는 만화의 제목은 동성 부부를 가리킨다. 마이크와 료지는 캐나다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동성끼리 결혼할 수 있는 나라가 스무곳이 넘고 결혼은 아니지만 파트너 관계를 인정하는 나라까지 합하면 서른곳이 넘는다. 하지만 료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홀로 남은 마이크는 함께 가겠다던 약속을 지키려고 고향에 갔다. 거기엔 료지의 형 야이치와 딸 가나가 살고 있다. 찾아온 마이크를 처음 보고 나처럼 야이치도 당황했다. 반가움에 포옹한 마이크를 밀어냈다. 초등학생인 가나가 마이크를 좋아하는 것도 꺼림직하다. 가나의 친구들은 편견이 없어,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마이크와 료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응원도 하는데 친구 엄마, 선생님, 그리고 야이치는 계속 엇박자를 낸다. 이들의 부자연스러운 처신은 대부분 오랜 세월 동안 사회의 편견에 길이 든 탓이다.

가장 큰 편견은 동성 커플의 관계를 성적인 관계로만 이해하려는 것이다. 가나가 마이크에게 묻는다. “마이크와 료지, 어느 쪽이 남편이고 어느 쪽이 아내였어?” “아내는 없어. 둘 다 남편이지. 아내는 여자를 가리키는 말이잖아? 나도 남자고, 료지도 남자니까, 둘 다 남편이야.” 금방 수긍한 가나와 달리 야이치는 이야기를 곱씹어본다. 그는 동성 커플을 생각할 때,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떠올렸던 것을 반성한다. 생활에서 이성 부부를 만난다고 그들 사이의 성적인 관계를 떠올리면서 거북해하지 않는데 동성 부부에 대해서만 이상한 상상을 하는 것은 이들을 인간으로, 친구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이상한 상상의 끝은 비극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들은 유대인들에게는 노란 별을, 동성애자들에게는 분홍 삼각형을 가슴에 채우고 수용소에 가뒀다. 수용소에 있었던 동성애자들의 수가 1만명은 훨씬 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는 대만 친구, 미셸의 가장 큰 자랑 중 하나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동성 결혼을 법으로 허용한 나라에 산다는 것이다. 그래봐야 재작년 일이다. 결혼 제도 자체가 희미해지고 있는 지금 그런 허용이 별 의미가 있을까 싶다가도 결혼도 마음대로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의미가 없지는 않겠다 싶다. 소설, 영화, 드라마에 동성 커플이나 부부가 넘쳐나는데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는 그들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편견이 그들을 숨게 만들고 법이 그들을 갈라놓는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들은 에너지가 높아서 붕괴되기 십상이다. 무너지고 다시 세우는 혼란을 겪기 전에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야이치와 이혼했지만 다정한 부인 나쓰키, 마이크, 그리고 가나는 함께 온천 여행을 떠난다. 이성 부부와 자식과의 관계만을 정상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관계의 가족. 이들보다도 기구한, 혹은 명랑한 관계의 가족들이 즐비한 오늘.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69.7%에 달한다. 서로가 편견으로 할퀴거나 밀어내지 말고 힘껏 안을 수 있기를.

만화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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