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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이슈 헌정사 첫 판사 탄핵소추

[사설] 與의 판사 탄핵 추진, 삼권분립 위협하는 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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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퇴직해 탄핵 실효성 없어

보복 통해 사법부 길들이기 의도

‘코드 판결’ 압박, 지지층도 달래

세계일보

임성근 부장판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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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그제 의원총회에서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절차를 밟기로 했다. 당론이 아니라 개별 발의 형식으로 추진한다. 이탄희 의원이 당 소속 의원들의 동의를 받아 금명간 탄핵소추안을 대표발의할 예정이다. 대법관이 아닌 일선 법관에 대한 탄핵 시도는 처음이다. 탄핵안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다. 민주당 의석수(174석)를 고려하면 2월 임시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크다.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탄핵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최종 결정한다.

법관은 헌법 제106조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신분을 보장받는다. 법관이 외압에 휘둘리지 않아야 사법부가 법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로 남을 수 있다. 법관 탄핵은 민주주의 기본 원칙인 삼권분립을 위협할 수 있는 처사다. 그동안 법관 탄핵 시도가 절제됐던 이유다. 역대 국회에서 대법관 탄핵 추진이 단 두 차례밖에 없었고 모두 실패했다. 물론 법관도 중대한 잘못을 범하면 탄핵될 수 있지만, 민주당이 임 부장판사를 탄핵하려는 배경을 보면 사법부를 겁박해 길들이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임 부장판사는 집권세력이 대표적 사법농단 사례로 꼽는 ‘세월호 7시간’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1심에선 판결문 작성에 개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직권남용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게다가 재임용을 포기해 내달 퇴직을 앞둔 상태다. 탄핵 실효성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당이 탄핵 카드를 뽑아든 것은 정치적 목적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권 눈 밖에 난 판사에게 끝까지 보복함으로써 사법부에 ‘코드 판결’을 압박하는 경고성 조치라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과 달리 일선 법원은 최근 여권에 불리한 판결을 잇달아 내렸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집행정지 인용, 정경심 동양대 교수 징역 4년,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 의원직 상실형 선고 등이 이어졌다. 친문 강성 지지층에선 사법부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법관 탄핵 추진에는 여당이 ‘수의 힘’을 빌려 지지층을 달래려는 속셈도 담겼다.

문재인정부 들어 일부 친여 성향 단체와 극렬 지지자들의 사법부 때리기가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이들은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내린 법관의 신상을 털고 문자 테러를 가하는 폭력적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나아가 사법농단으로 몰아세우며 개혁을 요구한다. 공당인 집권당은 이를 말리기는커녕 부추긴다. 안민석 의원은 페이스북에 “최강욱 의원님 힘내시라”고 격려하는 글과 함께 판사를 검찰 ‘대행업자’로 표현한 그림을 올렸다. 그림에는 윤 총장이 자신을 비난하는 최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판사를 향해 손 하트를 날리는 모습이 담겼다. 여당 중진의 인식이 개탄스러운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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