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앞에서는 옛 우정도 아무 소용 없었다. 유럽연합(EU)과 영국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면서, 그렇지 않아도 브렉시트를 거치며 생겨난 둘 사이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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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영국계 다국적 제약회사인 아스트라제네카가 “EU보다 석달 먼저 계약을 체결한 영국이 백신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데 대해 EU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텔라 키리아키데스 EU 보건담당 집행위원은 “선착순 논리는 정육점에서나 통하는 것”이라 일축하면서 “EU와 아스트라제네카의 선구매 계약에 그런 원칙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앞서 아스트라제네카는 백신 물량 부족으로 EU 국가에 올 1분기 중 공급하기로 약속한 물량의 25%밖에 공급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그러면서 영국에게는 한주 내로 200만 도스(1회 접종분) 분량의 백신을 차질없이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정부 대변인은 “영국 내에 있는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 공장에서 생산되는 1억 도스의 백신은 모두 영국 국민에게 공급될 것”이라며 “영국의 백신 접종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EU는 “구매 계약에 따르면 아스트라제네카가 EU에 백신 공급을 하기로 한 공장 4곳 중 2곳은 영국에 있다”면서 영국에서 생산되는 물량 중 일부를 EU로 돌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스텔라 키리아키데스 EU 보건담당 집행위원이 27일(현지시간) 열린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공급 차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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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소리오 아스트라제네카 최고경영자(CEO)는 EU가 강하게 반발하자 “EU 내에서 배양하는 백신 원료의 생산성이 낮아 공급이 늦춰지는 거지, 의도적으로 늦추는 게 아니다”라면서 “영국은 EU보다 석달 전에 백신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발언이 EU의 분노에 더욱 부채질을 하고 있다. 존슨 총리는 “우리가 EU에 남아 EU의 백신 프로그램을 따라야 했다면, 더욱 애처로운 상황에 놓이게 됐을 것”이라며 “우리는 (EU와) 다르게, 더 잘 해왔다”고 말했다. 현재 영국은 전체 성인 인구의 10% 이상에게 1회 접종을 마친 반면, EU의 접종률은 2%에 불과한 상황이다.
키리아키데스 집행위원은 전날밤 늦게 소리오 CEO와 긴급 회의를 가진 후 “EU 시민들이 하루 빨리 백신을 접종할 수 있도록 아스트라제네카 측과 계속 논의해 나가겠다”고 다소 누그러진 어조의 입장을 트위터에 밝혔지만,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영국 매체인 더타임스는 “브렉시트 이후 심해진 EU와 영국 간 갈등이 정치적으로 고조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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