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아르헨티나에서 후안 도밍고 페론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를 따르던 여당 의원들이 대법관 4명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했다. 페론이 만든 전국노동관계위원회에 대법원이 위헌 결정을 내린 데 따른 정치보복이었다. 9개월 만에 3명의 대법관이 탄핵됐고 나머지 한 명도 중도 사임했다. 권력을 견제하던 사법부가 무너지면서 페론은 사실상 독재자로 군림했다. 새 대법관들도 페론을 모욕했다는 혐의로 제1야당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정권에 힘을 실어줬다. 법관 탄핵이 사법부의 권력 예속으로 이어진 것이다.(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이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국회의원 107명이 '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된 임성근·이동근 부장판사 탄핵 추진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두 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제기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일본 기자 재판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법관 탄핵소추안 발의와 의결에는 각각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동의와 재적의원의 과반수 찬성이 필요하다. 국회 과반을 차지한 여당으로선 얼마든지 법관 탄핵이 가능하다.
하지만 법관 탄핵은 법치의 보루인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과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고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여권이 그동안 불리한 판결 때마다 판사 해임과 사법개혁을 압박해온 점으로 미뤄 '정치 보복'으로 비칠 수 있다. 실제로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구속한 성창호 부장판사는 1심 선고 후 사법농단 혐의로 기소됐고, 보수단체의 8·15 광화문 집회를 허가한 부장판사에 대해선 여당발 '박형순 금지법'이 발의됐다. 조국 전 법무장관 부인 정경심 전 교수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재판부 또한 탄핵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시달리고 있다.
판사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법관 자리마저 위협하는 것은 사법부를 통제하려는 위험한 발상이나 다름없다. 법관 탄핵 시도가 아르헨티나처럼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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