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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16개월 입양아 '정인이 사건'

[기자의눈] 정인이를 살려낼 순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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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13일 오후 경기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의 사진이 놓여 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는 이날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인이의 양모 장모씨와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등 혐의를 받는 양부 안모씨의 첫 공판을 열었다. 2021.1.13/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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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밝음 기자 = "율하(정인이 입양 후 이름) 살려내!"

지난 13일 생후 16개월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첫 공판이 끝나갈 무렵 한 방청객이 양모 장모씨를 향해 소리쳤다.

이날 서울남부지법에서는 종일 "정인이 살려내"라는 시민들의 고함과 비명,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민들은 양모가 탄 것으로 추정되는 호송차와 양부 안모씨의 승용차를 두드리며 분노를 쏟아내기도 했다. 법원 앞에 늘어선 조화와 울분에 찬 외침이 한데 섞여 법원이 아니라 장례식장에 온 것만 같았다.

과연 이 분노가 없었다면 '정인이 사건'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검찰이 양모의 혐의를 처음 기소했던 아동학대치사가 아니라 살인죄로 변경했을까. '정인이법'으로 불리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이렇게 빨리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을까. 국회가 2주 사이에 관련 법안을 20여 개나 쏟아냈을까.

'정인이 사건'을 다룬 방송을 본 시민들이 분노하지 않았다면 일어나기 힘들었을 일들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아동학대 사건이 그랬듯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재판이 끝나버렸을지도 모른다.

보건복지부 '2019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9년에만 아동학대로 42명의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정인이 사건'과 같은 관심은 드물었다.

'정인이 사건'을 향한 분노가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만 분노보다 중요한 건 지속적인 관심이다. 땜질 처방이 아니라 현장 상황을 반영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는지 계속해서 지켜봐야 한다.

국회에서 '정인이법'이 통과됐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현장에서는 아동학대 사건을 담당할 학대예방경찰관(APO) 인력이 한참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APO는 담당 업무가 많은 탓에 경찰 내 기피직무로 알려져 있다. 아동학대를 의심받은 부모가 과잉수사라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아동학대 피해 아동을 부모와 분리할 보호 쉼터도 부족하다. 앞으로 바꿔나가야 할 부분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법원을 가득 채웠던 분노가 단순히 양부모 처벌을 외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현실적인 대책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이제 더는 아이의 죽음을 대가로 사회문제가 드러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시민들의 외침처럼 정인이를 살려낼 수는 없겠지만 또 다른 정인이가 나오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brigh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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