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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알프스 눈길도 넘은 차, 서울서 울었다...폭설 그날 고급차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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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기습 폭설, 35년 만의 한파...자동차는 괴로워

조선일보

기습 폭설이 내린 지난 6일 저녁 서울 삼성역 인근 도로. 빙판에 미끄러진 승용차들이 도로를 막으면서 교통 체증이 극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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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 폭설이 내린 지난 6일 서울 광화문에서 일하는 직장인 A(56)씨는 최악 ‘퇴근 지옥’을 맛봤다. 회사에서 차를 몰고 출발한 시각이 오후 6시 30분, 역삼동 집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였다. 가는 곳마다 미끄러진 차가 도로를 막아 아수라장이었다. A씨 차는 후륜 구동식 벤츠. 겨울용 타이어를 달아 겨우겨우 움직일 수 있었지만 영동고 앞 언덕에선 그마저도 무용지물이었다.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차를 길에 버리고 집까지 걸어갔다. A씨는 “몇 해 전 프랑스에서 주재원으로 있을 때 지금 차를 샀다. 겨울에 샤모니 등 알프스 산악 지대 눈길도 끄떡없이 다녔다. 이번처럼 애먹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지난 열흘 기습 폭설과 한파가 겹치면서 차 때문에 고생한 사람이 많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자동차 긴급 출동 서비스 건수는 지난 6일 폭설 당일엔 7만8897건, 7일과 8일엔 각각 17만3555건, 33만2624건으로 치솟았다. 이 중 긴급 견인은 6~8일 각각 1만4560건, 2만6303건, 3만2402건이었다.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외제 차의 굴욕? 고급 차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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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긴급출동서비스 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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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페라리를 버려놓고 갔어요.” 6일 자동차 커뮤니티엔 올림픽대로에 버려진 빨간 페라리, 강변북로에서 청담대교 북단으로 가는 램프 앞에서 미끄러진 벤츠 사진 등이 올라왔다. ‘외제 차 굴욕’이라는 말이 나왔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확히는 후륜 구동 고급 차의 굴욕”이라고 했다. 자동차 구동 방식은 앞바퀴 힘으로 가는 ‘전륜 구동’, 엔진 힘을 뒷바퀴에 전달해 구동하는 ‘후륜 구동’, 네 바퀴 모두 힘을 실어 가는 ‘사륜 구동’으로 나뉜다. 전륜 구동은 엔진, 변속기 등 무거운 부품이 앞쪽에 있어 차 무게 70% 정도가 앞바퀴에 실린다. 그만큼 접지력(接地力·타이어와 노면의 밀착성)이 좋아 눈길에서 상대적으로 덜 미끄러진다. 국산 세단 대부분이 전륜 구동이다. 지난 폭설 때 눈에 미끄러져 헤매는 국산 차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이유다.

반면 후륜 구동은 엔진은 앞, 구동축은 뒤에 있다. 승차감, 직진성, 곡선 구간 안정성이 좋다는 장점 때문에 고급 차에서 주로 쓰는 방식이지만, 겨울이 문제다. 무게가 앞뒤 고르게 분산돼 뒷바퀴 접지력이 떨어진다. 눈길, 빙판길에서 미끄러지기 쉽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모든 외제 차가 후륜 구동은 아니다. BMW·메르세데스-벤츠는 후륜 구동이 많지만, 폴크스바겐 등 다른 브랜드는 전륜 구동도 많다”고 했다. 국내 세단 중에선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기아자동차 K9·스팅어 정도가 후륜 구동이다.

지난해 BMW 코리아의 전륜·후륜·사륜 구동 판매 비율은 각각 4%, 46%, 50%,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7%, 31%, 62%였다. 한 수입차 관계자는 “눈에 강한 사륜 구동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인데 이번 교통 대란 이후 수요가 더 늘어날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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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기습 폭설이 내린 다음날인 지난 7일, 경찰들이 얼어붙은 눈길에서 꼼짝 못하는 후륜구동 외제 스포츠카를 밀어주고 있다. 고급 차들이 주로 쓰는 후륜구동 방식은 구동 바퀴인 뒷바퀴 접지력이 안 좋아 빙판에서 맥을 못 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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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質이 달랐다…눈 많은 해외도 이럴까?

폭설은 한국만 내리는 게 아니다. 서울시의 늑장 제설이 교통 대란을 불러일으킨 측면이 크지만, 다른 요인도 있다. 김필수 교수는 “눈이 많이 온다고 해서 무조건 차가 미끄러지는 게 아니다. 설질(雪質)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수분을 많이 머금어 미끄러운 눈이 있고, 뽀송뽀송한 눈이 있는데 6일 내린 눈은 습기를 많이 머금은 눈이었다. 추위까지 겹쳐 내리는 동시에 얼어붙어 빙판이 됐다. 자동차엔 최악 상태였다”고 했다. 여기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은 서울 지형은 눈이 오면 악조건이 된다.

겨울용 타이어(윈터 타이어) 장착 비율이 낮은 것도 문제. 겨울용 타이어는 부드러운 소재를 써 영상 7도 이하 눈길을 달려도 접지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독일에서 사는 자동차 블로거 ‘스케치북 다이어리’는 “유럽에서 노르웨이·독일·체코 등은 명시된 기간은 없지만 겨울용 타이어를 의무 장착해야 하는 국가이고, 스웨덴·핀란드 등은 명시된 기간에 반드시 장착해야 하는 국가”라고 말했다. 준비가 돼 있으니 빙판길 혼란이 덜하다.

후륜 구동 차가 눈길에 갇혔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과거 후륜 구동 군용 트럭이 미끄러져 언덕을 못 올라갈 때 후진 기어를 넣고 거꾸로 올라가곤 했다. 눈길에 빠진 후륜 구동 차도 후진하면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전륜 구동이 전진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했다. ‘스프레이 체인’을 타이어에 뿌려 10~20분 정도 일시적으로 미끄럼을 줄일 수도 있다.

◇한파에 최악의 방전, 긴급 출동 신고 폭증

서울 마포에서 사는 B(46)씨는 폭설 바로 다음 날인 7일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문제는 8일 아침이었다. 지하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가 시동이 안 걸렸다. 이날 최저기온은 영하 18.6도. 35년 만의 최강 한파였다. 빙판길 운전 피하려고 강추위에 세워뒀다가 차가 방전돼 버렸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배터리 방전’ 때문에 긴급 출동 신고를 한 건수는 6~8일 각각 4만9678건, 12만5551건, 26만9674건으로 폭증했다.

이호근 교수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시동용 납산 배터리는 영상 5도까지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만, 영상 5도부터 10도 낮아질 때마다 성능이 30% 정도씩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즉, 영하 5도가 되면 성능이 70% 수준이 되고, 여기서 10도 더 떨어져 영하 15도가 되면 49% 수준이 되는 것. 이 교수는 “한파에 기온이 20도 정도 떨어지면서 배터리 성능이 급속도로 낮아졌다”고 했다.

방전을 예방할 방법이 있을까. 이 교수는 “나는 차를 일주일 정도 운행하지 않을 땐 보닛을 열고 목장갑을 낀 채 배터리의 마이너스 단자를 뺀 다음 목장갑으로 감싸둔다”고 했다. 블랙박스 주차 모드에서도 배터리 소모가 있다. 겨울엔 주차 상태에서 아예 블랙박스를 꺼놓는 게 좋다. 김필수 교수는 “보닛에 담요를 덮어 한기를 차단하고, 20~30분 시동을 켜놓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김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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