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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시선] ‘페르소나 5’ 속 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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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08년 게임 <페르소나 4>에서 텔레비전은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차원문 역할을 수행한다. 평범한 고등학생인 주인공 일행은 텔레비전 안으로 뛰어들어감으로써 가상의 던전 속 모험가가 된다. 이세계물이 인기가 있는 시대지만, <페르소나 4>의 텔레비전 속 이세계는 조금 다르다. 현실 세계와 영향을 주고받는 공간이라는 점에서다.

경향신문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마을에서 벌어지는 실종 사건은 피해자가 텔레비전 안으로 납치되면서 일어난다. 이를 해결하려는 주인공의 텔레비전 속 던전 모험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다. 텔레비전 속으로 유괴된 이들을 구하면서 변화하는 것은 독립된 판타지 세계가 아니라 그들이 발 딛고 사는 현실이다.

현실과 연계된 가상공간이라는 <페르소나 4>의 판타지 세계는 2017년 후속작 <페르소나 5>에서 의미를 더 명확하게 드러낸다. 전편에서 가상공간 진입로로 텔레비전을 사용했던 게임은 5편에서 스마트폰을 소재로 삼으며 10년 사이 변화한 매체 환경을 반영한다. 악역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가상공간은 이제 TV로 뛰어들기가 아닌 스마트폰의 ‘이세계 내비게이션’ 실행을 통해 이뤄진다.

일종의 AR처럼 주변 환경을 가상세계로 변화시키는 ‘이세계 내비’의 작동은 텔레비전의 뒤를 이으며 이 게임이 그려내는 가상세계가 곧 미디어에 대한 은유임을 드러낸다.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존재하며, 손에 잡히는 무언가는 아니지만 현실 세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디어 세계로 게임 속 판타지 공간은 자리잡힌다.

현실의 미디어들도 마찬가지로 가상의 공간을 형성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는 연계성을 보인다. 본연의 신체로는 닿지 않았을 수많은 메시지들이 미디어 이용자로서의 우리 주위를 둘러싸며 세계를 새롭게 의미 지어낸다. 텔레비전 같은 단방향 미디어 시대가 단지 세계를 재구성하는 데 머물렀다면, SNS 등의 인터넷 미디어는 이제 세계에 개입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힘까지 미디어 이용자들에게 쥐여준다. 그리고 그 힘은 단지 미디어 세계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미디어 권력의 횡포를 이야기하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개인들의 댓글도 멀쩡한 사람을 극단의 상황에 몰아넣을 수 있는 시대가 왔음을 우리는 여러 사례들을 겪으며 배웠다.

<페르소나 5>는 현실과 연계된 미디어라는 가상세계 속 악역이 단지 거대권력뿐 아니라 개인의 분노와 일그러진 욕망으로부터도 기인함을 보여주고자 한다. 던전 속의 악당은 거대 기업의 탐욕, 부패한 관료뿐 아니라 개인의 욕망으로부터도 발생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대중의 SNS 반응 때문에 곤경에 처하거나 응원을 받는 주인공의 상황은 기술로 열린 미디어 권력의 분산이 가능성이면서도 한편으로 새로운 위험을 만들어내는 현상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누구나 손쉽게 뛰어들 수 있는 SNS시대의 미디어 세계는 그 자체로 윤리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혐오표현을 다룬 책 <말이 칼이 될 때>의 제목에서 말을 칼로 바꾸는 도구는 모루로서의 SNS 기술뿐 아니라, 혐오발언을 하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을 포함한다. 포털 뉴스에서 스포츠, 연예 등 몇몇 섹션에 대한 댓글을 닫았지만, 여전히 미봉책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술로 열린 차원문은 선역과 악역을 구별하지 않는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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