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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민희진 일침’으로 재조명된 ‘앨범깡’···언제쯤 바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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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다량 구매 부추기는 팬 대상 이벤트 등

소비 강요하는 엔터 업계 과도한 상혼 비판

팬들 “버려지는 앨범 줄여야” 자성 목소리도

경향신문

‘일본 시부야 공원에 남자아이돌 세븐틴의 앨범이 무더기로 버려진 채 발견됐다’는 게시글이 2일 X(구 트위터)에 올라와 논란이 됐다. X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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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뉴진스를 기획한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이 대중의 주목을 받으면서 K팝 팬들 사이에서는 과열된 팬덤 문화에 대한 반성과 함께 아이돌 소속사의 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왔다. 특히 아이돌 팬들의 구매와 소비를 강요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과도한 상혼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하이브와 갈등을 겪고 있는 민 대표는 지난달 25일 기자회견에서 이른바 ‘앨범깡’ 등 K팝 업계의 병폐를 지적했다. 앨범깡은 팬 사인회 당첨권이나 앨범에 딸려 오는 포토 카드를 얻기 위해 같은 CD 앨범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행위를 뜻하는 은어다. 팬 사인회 당첨권이나 포토 카드가 구매의 목적이기 때문에 CD는 대부분 버려진다. 민 대표는 “이미 앨범을 구입한 팬덤이 같은 앨범을 계속 사고 있다”며 “업계가 랜덤 포토 카드, 밀어내기(중간 판매상에게 음반 물량 일정 부분을 구매하도록 강요하는 행위), 이런 짓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민 대표의 기자회견 직후 인기 아이돌 그룹 팬들의 앨범깡 사례가 실제로 발생해 주목을 받았다. 지난 2일 X(구 트위터)에서는 ‘남자 아이돌 세븐틴의 앨범이 일본 시부야 공원에서 무더기로 버려진 채 발견됐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와 논쟁이 벌어졌다. X 이용자들은 “음반은 포카(포토 카드)를 나르기 위한 포장지로 전락한 거 같다” “기획사는 버려질 걸 뻔히 알면서 왜 앨범을 만드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 민 대표가 지적한 앨범깡의 병폐가 재조명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K팝 팬 사이에서는 팬덤 문화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5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의 팬 김모씨(24)는 “좋아하는 아이돌 팬 사인회에 가려고 앨범을 300장 가까이 산 적이 있다”며 “이 중 70~80%는 버렸는데 마음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6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의 팬 박병은씨(26)도 “앨범을 많이 살 때는 1년에 450장까지 산 적이 있다”며 “포장지도 너무 많이 나오고 앨범이 버려지는 경우가 많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아이돌이나 K팝 스타에 대한 ‘팬심’이 깊을수록 들이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아이돌 그룹이나 K팝 스타의 앨범 1장 가격은 대체로 1만~3만원이다. 팬 사인회에 초대될 기회를 잡으려고 같은 앨범을 100장을 샀다면 팬 사인회 참가 비용으로 100만~300만원을 쓰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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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아이돌 그룹 팬 김모씨가 팬 사인회 당첨권을 받으려고 이른바 ‘앨범깡’으로 구매한 다음 처분하기 위해 모아 둔 앨범들. 김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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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이처럼 돈도 많이 들고 쓰레기를 많이 배출한다는 죄책감이 들지만 앨범깡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갈수록 아이돌과 가까이에서 만날 기회가 줄어들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앨범깡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씨는 “최근 극소수 팬을 대상으로 한 영상통화 팬 사인회까지 등장해 ‘앨범깡’이 더 과열되고 있다”며 “엔터 업계가 이런 이벤트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씨도 “예전에는 팬 사인회 당첨 인원이 100명 이상일 때도 있었지만 코로나 이후 30~50명만 부르는 게 추세가 되면서 경쟁이 더 과열됐다”고 말했다.

앨범 판매를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미끼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꾸준히 지적돼 온 문제다. 앨범에 ‘미공개 포토 카드’(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아이돌 사진으로 만든 포토 카드)나 ‘럭키드로우’(무작위 제비뽑기 식의 굿즈 제공)를 끼워 넣는 것이 대표적이다. 심지어는 ESG 경영을 명목으로 만든 굿즈에 미공개 포토 카드를 끼워 넣어 소비를 부추기기도 한다. 김씨는 “ESG 경영의 일환으로 만든 친환경 굿즈까지 랜덤 포토 카드로 대량 구매를 유도하는 것을 보며 아이돌 팬들을 기만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버려지는 앨범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팬들도 있다. A씨(30대)는 팬들로부터 앨범깡을 하고 남은 앨범들을 수거해 기부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운영하는 등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했다. A씨는 “너무 많은 앨범이 버려져 대안을 생각하다가 기부받기를 원하는 청소년 단체와 소통해 앨범을 기부하고 있다”며 “업계가 ‘욕하면서도 구매하는 팬들의 심리’를 너무 잘 활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번 민 대표 기자회견을 해프닝으로 넘길 게 아니라 엔터 업계 전반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랜덤 상품 등으로 앨범 구매를 유도하는 마케팅은 2000년대 초반에도 존재했지만 최근 엔터사들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러한 마케팅의 폐해가 더 커지고 있다”며 “음악을 즐기는 방식이 달라진 만큼 업계도 시대에 발맞추는 방식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현재의 CD 음반은 음악을 듣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팬들이 소비하게 하기 위한 도구가 됐다”며 “좋아하는 가수와 관련된 물건을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부정할 수는 없는 만큼 포토 카드에 QR 코드를 인쇄해 음원을 내려받을 수 있게 하는 등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일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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