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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매경의 창] 아동학대 범죄, 온 국민이 나서야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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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아동학대는 참혹한 범죄입니다. 피해자가 약자이고 대부분 가정에서 발생해 찾아내기도, 막기도 힘듭니다. 피해를 조기에 발견해 가해자로부터 격리하고 치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합당한 벌을 받게 하고 가해자의 재범도 막아야 합니다. 울산과 칠곡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으로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습니다. 세밀하게 살피고 끈기 있게 실천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경찰과 아동보호 전문기관, 검찰과 법원, 어린이집, 학교, 병원 모두의 역할이 큽니다.

2014년 울산검사장 시절 '울산 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됐습니다. 소풍 가고 싶다는 일곱 살 여자아이를 무차별적으로 때리고 걷어차, 갈비뼈 16개가 부러져 폐가 찔려 숨지게 했습니다. 검찰은 부검의와 전문가 의견을 듣고 시민위원회를 거쳐 살인죄로 기소했습니다. 재판 때마다 '사형! 사형!'을 연호하는 시민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지만, 살인죄를 인정한 판례도 없었고 형량은 10년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이 다른 나라에서 발생했다면 어떤 처벌을 받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해외 연수 중인 검사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영국의 대니얼 펠카 사건, 독일의 카롤리나 사건, 미국의 엘리 존슨 사건 모두 살인죄로 법정 최고형이 선고됐습니다. 수사팀은 물론 검사장과 차장·부장검사들이 머리를 맞대었습니다. 검사장부터 사건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전문가 견해를 경청했습니다. 대검 검사장들 의견도 수렴해 사형 구형을 결정했습니다. 이명숙 여성변호사협회 회장과 회원 165명도 살인죄로 엄벌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해주셨습니다.

1심 법원은 살인죄는 무죄를 선고하고 상해치사죄로 징역 15년을 선고했습니다. '피고인이 흉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살해의 고의가 생겼다는 정황이 없으며, 출혈이나 호흡 곤란이 있었다고 볼 사정이 없었다'는 이유입니다.

검찰은 즉각 항소하고 국내 최고 법의학자인 이정빈 교수에게 추가 감정을 요청했습니다. 항소심 법정에 선 이 교수는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찌르는 고통은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의 '단말마의 고통'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아이들 갈비뼈는 부드러워 엄청난 힘이 아니면 부러지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검찰은 피고인이 가슴과 옆구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했고, 아이가 핏기가 없고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질렀음에도 계속 폭력을 행사한 점을 추궁했습니다. 그전 학대 장면이 담긴 휴대폰 녹음 파일도 기적처럼 복구해 법정에서 공개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하고 징역 18년을 선고했습니다. '아동에게 성인의 주먹과 발은 흉기와 같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울산 검찰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전문가와 함께 '아동학대 중점 대응센터'를 만들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후회 없이 해결하려면 세밀하게 자료를 검토하고 사건 관계인들을 만나 심층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초동 단계 부검의, 아동보호 전문가, 경찰관과 검사, 법의학과 포렌식 전문가, 법원 판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충분한 시간과 열정과 예산이 필수입니다.

예방은 더 어렵습니다. 아이는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고 존중받아야 할 독립된 인격체임을 인식하도록 학교 시절부터 인권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아이에게도 무엇이 학대인지 알 수 있게 일러줘야 합니다. 학교와 어린이집, 병원과 이웃 모두 우리 옆의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발생 사건 하나하나를 되짚어 보고 성찰해야 합니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면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워야 합니다. 아동학대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나서야 합니다.

[봉욱 前 대검 차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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