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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금지 사후 승인이 관행? 실명 내건 판·검사들 “미친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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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불가피했다” 해명에… 법조계 “사실상 잘못 시인한 것”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금 요청 서류에 ‘가짜’ 사건·내사 번호가 기재된 것을 두고 법무부가 “긴급한 경우 관행적으로 임시 번호를 부여하고 사후에 정식 번호를 받기도 한다”고 해명하자 일선 검사들이 “세상에 그런 관행이 어딨느냐”고 비판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다수의 법조인은 “해명이 아니라 사실상 불법성을 시인한 것”이라는 평가도 내놨다.

◇법무부 “불가피한 사정, 관행”

2019년 3월 22일 밤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는 김 전 차관 출국을 막기 위해 김 전 차관이 과거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건 번호를 긴급 출국 금지 요청서에 기재했다. 위법이었다. 이 검사는 이후 제출한 긴급 출국 금지 승인 요청서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가짜 서울동부지검 내사 번호를 기재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지난 12일 처음 입장을 내고 “이 검사는 서울동부지검 검사직무대리 발령을 받은 수사기관에 해당하므로 내사 및 내사 번호 부여, 긴급 출국 금지 요청 권한이 있고 당시는 중대한 혐의를 받고 있던 김 전 차관이 심야에 국외 도피를 목전에 둔 급박하고도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법조계에서는 “급박하고 불가피하면 불법이라도 괜찮다는 것이냐.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조국 흑서’ 공동 저자 권경애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불법'과 ‘불가피’가 어떻게 양립 가능한 선택지가 될 수 있나”라며 “불가피해도 권력 행사에 불법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치주의 원칙”이라고 했다.

◇법조계 “사실상 민간인 불법 체포”

법무부 해명은 관련 법 조항과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출입국관리법 4조의 6은 ‘범죄 피의자’에 대해 긴급한 필요가 있을 때 긴급 출국 금지를 하도록 규정한다. 당시 김 전 차관은 수사기관에 입건된 피의자 신분이 아니었다. 검찰 ‘김학의 수사단’은 2019년 4월 1일 꾸려졌다. 한 검사는 “민간인을 불법 체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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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국관리법 시행령 5조의 2는 긴급 출국 금지를 요청할 수 있는 주체를 ‘수사기관의 장(長)’으로 규정한다. 검찰총장이나 지검장, 국세청장 같은 기관장이 출금 요청권자인 것이다. 동부지검 검사직무대리로 발령받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으로 활동하던 이 검사는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 김 전 차관의 출국 금지 요청 서류에 동부지검장 관인은 없었다.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수사 권한도 없다. 이 때문에 이 검사 역시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 금지를 당초 대검에 요청했다. 이 검사가 가짜 동부지검 내사 번호를 적은 것과 관련, 이성윤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동부지검장이 내사 번호를 생성한 것으로 해달라”는 취지의 전화를 동부지검 관계자에게 한 것도 이 검사 행위의 불법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한 변호사는 “동부지검 검사직무대리라서 수사 및 출금 권한이 있다는 법무부 해명은 비슷한 형식으로 정부 부처에 파견된 모든 검사가 맘대로 특정인을 출금하고 수사할 수 있다는 황당한 얘기”라고 했다.

◇이용구 “사건 번호 부여에 관여 안 했다”

이용구 법무차관은 이날 당시 법무부 법무실장으로서 김 전 차관 출금을 기획했다는 본지 보도에 대해 “신속히 출국을 막을 필요성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에서 권고하는 방안을 언급한 것일 뿐 실제 출국 금지를 요청하는 수사기관의 소관 부서나 사건 번호 부여 등의 구체적인 절차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고, 관여할 수도 없었다”며 “마치 긴급 출금의 전 과정을 기획하고 불법을 주도한 것처럼 표현한 기사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검찰 안팎에서는 “사실상 김 전 차관 출금이 불법이라는 점은 시인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정유미 부천지청 인권감독관은 페이스북에 “나중에 제대로 사건 번호 붙이는 게 관행이라고? 검찰에 그런 관행 같은 건 있지도 않고 그런 짓을 했다가 적발되면 검사 생명 끝장난다”고 썼다.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검사가 조작된 서류로 출국을 막았다는 기사를 보고 순간 머릿속에 명멸한 단어는 ‘미친 짓’이다”라고 했다. 이규원 검사와 함께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활동한 박준영 변호사는 “권력 의지로 사람을 집어넣을 수 있다는 사실,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이번에 엄벌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면 앞으로 이런 게 진짜 수사 관행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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