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면제 원칙’ 주장하며 반발
일본 내 “공론화 역풍” 신중론도
한국에 경제적 보복 우려 있지만
일본경제에도 악수될 가능성
ICJ 제소가 유력 방안으로 떠오른 건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한국 법원 판결에 반발하는 근거는 ‘한 국가의 법원이 타국을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상의 ‘주권 면제’(국가 면제) 원칙이다.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에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은 이 원칙에 위배된다는 게 일본 정부의 주장이다. 반면 서울중앙지법은 국가가 조직적으로 저지른 반인도 범죄인 위안부 피해는 국제법규상 상위에 있는 ‘강행 규범’을 위반한 것이라 주권 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04년 이탈리아 대법원은 한국 법원과 같은 논리로 2차 대전 당시 독일에서 강제 노역을 했던 루이키 페리니가 독일 정부를 상대로 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독일 정부에 배상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일명 ‘페리니 사건’이다. 이후 독일 정부는 이 사안이 주권 면제 원칙을 위반한다며 ICJ에 제소했고, ICJ는 최종적으로 독일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일본이 이 문제를 ICJ에 제소한다 해도 한국 정부가 이에 불응할 경우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한국은 상대국이 ICJ에 소송을 제기하면 무조건 수용하는 ICJ의 ‘강제(의무적) 관할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일본은 1958년 강제 관할권을 수락했다.
ICJ 제소에 대한 신중론도 나온다. 요미우리 신문은 10일 “ICJ에서 다툴 경우 주권 면제를 인정받을 수 있지만, 위안부 문제가 (국제적) 쟁점으로 떠오를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ICJ 제소는 법적으론 가능한 절차지만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본 입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현실성이 매우 떨어지는 카드”라며 “위안부 문제 자체를 노출하거나 공론화하지 않으려는 일본이 ICJ 제소에 나서면서까지 괜한 이목을 끌 유인이 없다”고 분석했다.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국내 일본 자산을 매각해 이를 배상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 어렵단 점도 ICJ에 제소할 유인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빈협약에 따라 국내의 일본 대사관·총영사관 부지 및 비품은 강제 집행 대상에서 면제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개인이나 민간 기업의 자산도 아니고 일본 정부의 자산을 압류하거나 매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며 “가능하다 하더라도 자산 매각 시 일본의 보복 조치 등이 우려되는 데다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시각에서도 무리한 집행처럼 여겨지는 외교적 리스크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 때처럼 경제적 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가 취임 4개월 만에 지지율이 급락하며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보복 카드를 활용해 지지층 결집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일본 경제가 주저앉은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일본 경제에 부담이 가해질 경우 또 하나의 악수가 될 수도 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정진우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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