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파장 최소화 고심 "한일간 협력 계속"
한일위안부합의, 오바마 행정부에서 체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한일관계 개선' 압박 거세질 수도
한일관계가 연초부터 대형 악재를 만났다. 정부가 강창일 신임 주일대사를 임명한 8일, 한국 법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해자 승소로 판결했다. 일본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면서 남관표 주일대사를 불러 항의했다. 한국 측의 재판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항소도 안 할 방침이다. 지난해 스가 내각 출범 후 다소 호전되는 듯하던 한일 관계가 다시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8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소녀상.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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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판결은 주권 국가는 다른 나라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주권면제' 원칙을 주장한 일본 측 논리를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의미가 있다. 위안부 피해자인 배춘희 할머니 등은 2013년 8월 일제강점기에 폭력을 사용하거나 속이는 방식으로 위안부를 차출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각 위자료 1억원씩을 청구하는 조정 신청을 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 소송이 헤이그송달협약 13조 '자국의 안보 또는 주권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주권면제' 원칙을 내세워 소장 접수 자체를 거부했다.
판결이 나온 후 일본 정부는 주권면제 원칙을 다시 언급하며 "국제법 위반"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은 "한국이 국가로서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고 했다. 그는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일본 정부가 한국 측 재판권에 복종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항소하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 법원의 1심 판결은 그대로 확정이 되며,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에게 1억원씩 배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내·외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9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퇴임하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가 취임하자 기대감을 내비쳤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끄는 한일의원연맹 대표단과 박지원 국정원장이 잇따라 일본을 방문해 스가 총리와 면담했다. 현재 한일간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압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면담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해를 넘겼고, 연초부터 위안부 판결이라는 새 뇌관이 추가된 것이다.
정부는 파장 최소화를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이날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판결과 관련해 "외교부가 입장을 설명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외교부는 대변인 명의 논평에서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한일 양국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이 계속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헸다. 또 "정부는 2015년 12월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한다"고 했다. 위안부 문제는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로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며 합의 준수를 요구하는 일본 측에 유화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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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달리 동맹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오는 20일 취임하면 한일관계 구도가 지금과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미·일 삼각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한·일 관계를 개선하라는 요구를 할 것이라는 관측인데, 한국에 긍정적이지는 않다. 이런 일은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겪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한일관계는 우호적이지 않았다. 한 원인이 위안부 문제였다. 박 전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은 박 전 대통령 취임 2년8개월만인 2015년 11월에 성사됐을 정도다. 그 한달 뒤인 2015년 12월 28일 한일위안부합의가 체결됐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한일간 협상에 물밑에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일위안부합의 후인 2016년 1월7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이뤄진 박 전 대통령과 통화에서 "정의로운 결과를 얻어낸 박 대통령의 용기와 비전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또 같은 날 아베 총리와 통화하면서는 "위안부 합의로 한·미·일 협력이 유엔에서도 더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린 가운데 윤병세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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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첫 주일대사를 지낸 이수훈 전 대사는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위안부 문제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다 해결되었고, 한국 정부가 합의를 이행하라'는 입장으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일본 정부가 사죄와 반성을 바탕으로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회복을 위한 노력을 자발적으로 기울이고자 할 때 풀릴 수 있다"고 했다.
손덕호 기자(hueyduck@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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