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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레깅스는 일상복" 무죄 뒤집었다…대법 "몰카는 성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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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깅스 입은 뒷모습 8초간 동영상 촬영행위

1심 유죄→2심 무죄, 다시 유죄로 파기환송

대법 "함부로 촬영되지 않을 성적 자유" 인정

중앙일보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모습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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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한 행위에 대해 대법원이 성범죄로 보고 처벌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신체 노출이 비교적 적은 일상복을 입고 있더라도 당사자 의사에 반해 몰래 촬영하는 건 성적 욕망 혹은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행위라고 본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2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1심은 유죄, 2심은 무죄 왜?



A씨는 지난 2018년 버스 뒷문 근처에 서 있던 여성 B씨의 뒷모습을 8초간 몰래 동영상 촬영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B씨는 당시 하의로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레깅스를, 상의는 헐렁한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A씨는 1심에서 벌금 70만원의 유죄를 받았다. 1심은 촬영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행위로 봤다. 2심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을 맡은 의정부지법 형사1부(재판장 오원찬)는 촬영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곳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촬영된 사진에서 B씨 신체가 노출된 부위는 레깅스 끝단과 운동화 사이 발목 부분 등 아주 미미한 부분이란 취지다. 또 몰래 찍은 건 맞지만 “통상적으로 눈에 보이는 시야를 촬영한 것”이라 했다. 덧붙여 “피해자는 레깅스를 일상복으로 활용하며 대중교통까지 탄 점을 고려하면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2019년 나온 이 판결은 재판부가 판결문에 문제가 된 피해자 사진을 첨부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고, 판결 내용을 두고 ‘레깅스 논쟁’을 불붙이기도 했다.



신체 노출 거의 없었지만…



대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준 2심이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는 사건의 맥락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일반적으로 법원은 가슴, 성기, 엉덩이 등의 신체를 촬영한 경우 유죄 판결을 해왔다. 최근에는 그 신체 범위를 허벅지, 배 등으로 넓혀 왔다.

이번 판결에서는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의 대상이 되는 신체가 반드시 노출된 부분으로 한정된 건 아니다”며 “이 사건처럼 엉덩이와 허벅지 굴곡이 드러난 경우에도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법원은 문제가 된 사진의 촬영 방식, 촬영자의 의도와 촬영 경위 등 촬영의 맥락을 두루 살펴 유ㆍ무죄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A씨는 조사에서 “몸매가 예뻐 보여 동영상을 촬영했다”며 피해자 하반신을 주로 찍었다. A씨 진술에 따르더라도 성적 욕망에 따라 촬영했다는 것이 대법원 판단이다.



일상복 된 레깅스, “촬영은 다른 문제”



“본인 선택으로 레깅스를 입은 것인데 어떻게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느냐”는 주장에 대해 대법원은 이런 대답을 내놨다. “설령 스스로 드러낸 신체라 하더라도 이를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함부로 촬영한다면 당사자가 충분히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과 촬영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법원은 “통상 일반인의 시야에 드러난 신체 부분은 일정 시간 동안만 관찰될 수 있고, 관찰자 기억에도 한계가 있으며 이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면 그 모습이 촬영되면 고정성과 연속성, 확대 등 변형 가능성 및 전파 가능성이 생긴다”며 “이로 인해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하고, 나아가 인격권을 더욱 중대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대법원이 “자기 의사에 반해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을 자유”를 인정한 것이다.

피해자는 A씨의 촬영에 항의하며 수사기관 조사에서 “기분이 더럽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나, 왜 사나 했다”라고 진술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함부로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이용됐다는, 인격적 존재로서의 분노와 수치심의 표현으로 성적 수치심이 유발됐다는 의미로 충분히 이해된다”고 판시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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