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생후 492일만에 학대로 숨진 정인이가 사망 전 날 어린이집 폐쇄회로 TV에 담긴 모습. 아이는 담임선생님 품에 계속 안겨있거나 멍하게 홀로 앉아있기만 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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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모 학대로 숨지기 직전 정인이를 진찰하고 경찰에 아동학대 신고를 한 의사가 "15개월 아기한테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자포자기랄까, 체념한 듯한 표정이었다"며 정인이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소아과 전문의인 A씨는 5일 오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지난해 9월 23일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온 정인이의 모습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인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동학대 신고는 3차례나 있었는데, A씨는 가장 마지막 신고자다.
그는 당시 진찰 과정에서 학대 정황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20일 후인 10월 13일 온 몸에 멍이 든채 서울 양천구의 한 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정인이는 치료를 받다 숨졌다.
A씨는 "정인이는 제가 자주 진료를 했던 아이는 아니고 2020년 1월 말쯤부터 신고 당일까지 예방접종을 포함해 8, 9번 정도 진료했던 환자"라며 "당시 어린이집 원장님께서 오랜만에 등원한 정인이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인다며 병원에 데리고 오셨고, 그때 두 달 만에 정인이를 본 상황이었는데 영양 상태나 정신상태가 너무 차이 나게 불량해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장님도 한두 달 안 보다가 그날 처음으로 정인이를 보셨다고 했다"며 "15개월짜리 아기들이 가만 안 있는데, 정인이의 경우 잘 걷지도 못하고 원장님 품에 축 늘어져서 안겨 있었다"고 부연했다.
A씨는 "사실 그 이전 5월쯤에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1차로 아동학대 신고를 하셨을 때, 허벅지 안쪽 멍 자국에 대한 아동학대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분들과 아동보호기관, 부모님이 병원에 오신 적이 있었고, 또 6월쯤 정인이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오셨는데 왼쪽 쇄골 부위가 부어 있었다. 7월쯤 예방접종 하러 왔을 때도 입 안에 설명하기 힘든 깊고 큰 상처가 있었다"며 "이런 진료 내용이 있었던 차에 9월 23일 정인이의 모습을 보니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심각한 아동학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신고를 하고 난 뒤 경찰분들이 상당히 빨리 병원에 출동하셨던 거로 기억한다. 그동안 정인이에 대한 진찰 과정을 자세하게 말씀드렸고, 제 나름대로 상당히 강하게 말씀을 드렸다"며 "경찰분들도 잘 들으시고 바로 아동보호기관 담당자들과 정인이 부모님을 만나러 가겠다고 했는데, 그 이후로는 따로 연락이 없어 어떤 조치가 취해졌으리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A씨는 "세 번이나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설사 그게 조사 과정에서 법적인 뚜렷한 물증이 없었다고 해도 어떤 방식으로든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아동학대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99%라고 하더라도 사실일 가능성 1%에 더 무게를 두고 접근해야 하는 그런 사항인 것 같고, 그런 이유로 아동학대는 의심만 들어도 신고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은빈 기자 kim.eun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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