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브렉시트 시작된 31일 밤 11시, 런던에선 무슨 일이…
이날 영국인들은 ‘진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를 맞았다. 형식적인 브렉시트는 이미 작년 1월 31일 이뤄졌다. 이때 영국은 EU에서 의결권을 잃었고, EU 회원국은 28곳에서 27곳으로 줄었다. 이후 11개월간 교역·이동 조건을 예전 그대로 유지하면서 피부로 와닿는 변화는 없었고, 지난달 말 미래 관계에 대한 합의를 이뤄내 이날부터 완전히 남남이 됐다. 영국이 1973년 EU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후 47년간 이어 왔던 유럽 본토와의 동거를 끝낸 것이다.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한 순간으로부터는 4년 6개월이 흘렀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신년사에서 “이제 우리의 자유는 우리의 손에 있다”고 했다. 영국인들은 밤 11시에 맞춰 소셜미디어에 #HappyBrexit(행복한 브렉시트)와 같은 해시태그를 달며 자축했다. 유로화 지폐 뒷면에 있는 유럽 지도에서 영국 땅에 엑스(X)를 그린 사진, 별 12개가 새겨진 EU 깃발에서 별 하나를 지우는 사진이 속속 올라왔다.
지난 31일 밤(현지 시각) 영국 런던의 대형 시계탑 ‘빅벤’의 시곗바늘이 오후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 시각을 기해 영국은 유럽연합(EU)에서 완전히 탈퇴하며 브렉시트 절차가 마무리됐다(위 사진). 이날 밤 런던 국회의사당 광장에서는 변이 코로나 확산에 따른 최고 수준의 봉쇄 조치 속에서도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모여들어 건배를 하며 환호했다(아래 사진). /EPA AP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EU는 2차대전 이후 미국에 밀린 유럽이 하나로 뭉쳐 예전의 영화를 찾자는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러나 EU라는 무대에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었던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다. 독일·프랑스가 주도하는 EU에서 왜 영국이 연간 1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분담금을 내며 조연에 그쳐야 하느냐며 반감을 표시하는 사람이 늘었다. 실리적인 측면에서도 EU 규제를 따라야 했고, 독자적인 무역정책을 펼 수 없다는 불만이 있었다. 동유럽에서 몰려오는 이민자에게 일자리를 뺏긴다는 거부감도 커졌다.
영국은 새해 벽두부터 ‘자유’를 가시화하는 작업을 서두를 예정이다. 미국,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과 독자적인 무역협정 체결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아직 숙제가 많다. 무엇보다 일상이 번거로워진다. 이날부터 영국인은 EU에 90일 이상 머무르려면 비자를 따로 받아야 한다. EU에 사는 영국 국적자는 130만명에 달한다. 그런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국민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당장 존슨 총리의 아버지 스탠리 존슨부터 프랑스 국적을 신청했다. 프랑스 여권을 들고 EU 회원국을 제한 없이 왕래하기 위해서다. 그는 외가가 프랑스 혈통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가입·탈퇴 과정 |
기업들도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고, 이는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날부터 영국과 EU 사이에는 통관과 검문 절차가 생겼다. 기업들은 세관 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통관 절차를 기다리느라 도버항에 최대 7000대의 트럭이 줄을 서야 할 수 있다”고 했다.
연합왕국으로서 영국이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이날 밤 11시에 맞춰 트위터에 “스코틀랜드는 곧 유럽으로 돌아갈 거예요. 불 켜고 기다리세요”라고 썼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스코틀랜드가 영국에서 떨어져 나가 EU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싶다는 것이다. 스터전은 올해 분리·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예고했다.
강경한 브렉시트 찬성파 사이에서는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는 불만도 나온다. 존슨 총리는 EU 단일시장에 무관세·무쿼터로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대신 EU와 동일한 수준의 노동·환경 규제를 받아들이고, 기업 보조금 지급도 EU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기로 했다. 영국 수출에서 EU 비중이 43%에 달하기 때문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일간 가디언은 “혼란이 올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 가운데 영국은 팡파르 없이 EU의 궤도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