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중심부의 쇼핑몰에 설치된 성탄절 기념 장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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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아시아-71] 2020년 한 해도 어느덧 저물어가고 있다.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연중 가장 들뜨는 시기인 성탄절 연휴가 찾아왔지만, 시내 번화가에서조차 떠들썩함을 구경하기 어려울 만큼 사회 전반이 가라앉은 분위기다. 1년여 전 중국 우한시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평범했던 하루하루를 그리워하는 안타까움이 지구촌에 가득하다. 이는 세계 최대 무슬림(이슬람 신자) 국가인 인도네시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자카르타, 반둥 등 대도시 쇼핑몰 및 중심가에 설치된 화려한 장식과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은 여전하지만 성탄절(Hari Natal Raya)을 보내는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담담하다.
전체 인구의 85%가 넘는 2억2000만여 명의 무슬림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에서 성탄절을 기념한다는 사실이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를 건국 이념으로 내세운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교를 포함해 개신교와 천주교, 힌두교, 불교 및 유교 등 6개 종교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해왔다. 현재 인도네시아에는 국민 10명 중 1명꼴인 약 2500만명이 기독교를 따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신교 신자가 천주교 신자보다 많은 것으로 전하는 가운데 파푸아섬, 술라웨시섬 북쪽 등 주로 인도네시아 동부지역에 기독교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흔히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으로 불리는 화인 공동체에도 대를 이어 기독교를 믿는 사례가 많다. 실제 화인들이 역사적으로 터를 잡아온 자카르타 북쪽의 차이나타운에는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유일하게 중국어로도 미사를 진행하는 교회가 남다른 시선을 사로잡는다.
중국어 미사가 진행되는 자카르타 차이나타운 내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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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교를 인정하지 않고 개인 신앙의 자유를 존중해온 인도네시아 달력에는 6개 종교를 맞이하는 공휴일이 하루 이상씩 존재한다. 기독교 또한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 정부는 1993년 성탄절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고 매년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예수 탄생일을 기념해왔다. 이슬람교의 지배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성탄절을 빠짐없이 챙기는 광경이 조금은 낯설었던 필자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한 해의 끝자락 일상에 익숙해져 갔다. 오히려 해가 거듭될수록 12월의 영리적 측면이 부각되는 현상을 우려한 이슬람 보수 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져온 사실은 역설적으로 대다수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성탄절이 큰 거부감 없는 휴일로 받아들여져 왔음을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24~25일 공휴일에 26~27일 주말이 더해진 황금 연휴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예년과 같은 왁자지껄함을 접하기 힘들다. 코로나19 사태가 계속해 위력을 떨치면서 상업 시설은 영업 제한을 받고 유동인구 또한 줄어들면서 이래저래 활기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 일평균 6000명대의 신규 확진자가 집계돼 온 인도네시아의 총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어느덧 7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 회원국들 중 가장 높은 수치로 확진자 숫자에 비례해 사망자 숫자도 이미 2만명을 돌파했다. 이렇듯 심각성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조용하고 안전한 연말연시를 즐기자는 공감대가 넓혀져 온 데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1년 후 이맘때에는 코로나19 사태가 다분히 진정된 인도네시아에 원래의 성탄절 풍경이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
[방정환 YTeams 파트너 / '수제맥주에서 스타트업까지 동남아를 찾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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