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CNN 인터뷰 영상. 강 장관이 2014년 북한군의 ‘고사포’ 발사 사례를 언급하자, CNN 수석 앵커 크리스티안 아만푸어는 “풍선에 고사포를 발사하더니 형평에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이를 공식 유투브 계정에서 “말씀을 들어보니, 대북전단 살포나 북측의 발포 등의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고 번역했다가, ‘오역’ 지적이 일자 수정했다.(왼쪽 위아래 사진). 강 장관이 대북전단금지법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인권의 하나이지만 절대적이지 않고,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유투브 화면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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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북전단금지법’ 홍보 과정에서 ‘오역 논란’을 자초한 외교부에 이어, 통일부도 ‘인터뷰 편집’ 논란에 휘말렸다. 정부의 ‘대북전단금지법 옹호 캠페인’이 무리수를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칼 거쉬먼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ED) 회장은 22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통일부가 대북전단 활동과 관련한 자신의 언론 인터뷰 내용을 잘못 사용(misuse)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다(disappointed)”고 밝혔다. 통일부가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관련 설명자료에서 자신의 발언을 의도와 다르게 사용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통일부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다음날인 지난 15일 배포한 자료에서 ‘전단살포가 북한인권을 개선한다는 증거가 없다’는 근거로 몇 가지 사례를 적시했는데, 여기엔 거쉬먼 회장이 지난 6월12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한 인터뷰 내용도 포함됐다. “거쉬먼 NED 회장도 VOA와의 인터뷰에서 대북전단 살포가 효과적인 정보 유입 방법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면서다.
통일부는 23일 거쉬먼 회장의 문제제기와 관련 “6월 12일 VOA가 보도한 인터뷰 기사에서 거쉬먼 회장의 해당 발언을 인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거쉬먼 회장이 실제 발언한 내용을 단순 옮겨온 것으로, 문제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당시 거쉬먼 회장의 VOA 인터뷰 원문을 보면 통일부가 정부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터뷰의 일부 대목만을 편집, 발췌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그가 NED가 국무부 예산으로 북한인권단체들을 지원하면서도 전단 살포 단체를 지원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대북전단 살포가 아주 효과적인 정보 유입 방법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고 밝힌 것은 사실이나, 한국 정부의 대북전단 규제 움직임에는 “매우 유감이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나타냈기 때문이다. 거쉬먼 회장으로서는 자신의 발언이 마치 대북전단 규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사용된 데 대해 불쾌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앞서 외교부도 지난 16일 방송된 강경화 장관의 CNN 인터뷰 영상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사회자의 발언을 오역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강 장관은 인터뷰에서 2014년 북한군이 대북 전단이 담긴 풍선에 ‘고사포’(실제로는 고사총)를 발사한 사례를 언급하자, CNN 수석 앵커 크리스티안 아만푸어는 “풍선에 고사포를 발사하더니 형평에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그런데 외교부는 공식 유투브 계정에 영상을 게시하면서 아만푸어 앵커의 발언 아래 “말씀을 들어보니, 대북전단 살포나 북측의 발포 등의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라는 한글 자막을 달아 내보냈다. 앵커의 발언 내용을 전혀 다르게 해석, 마치 그가 대북전단금지법에 공감한 것처럼 번역한 것이다.
외교부 측은 오역 지적이 일자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였다”며 해당 부분을 곧바로 수정했다. 그러나 정부가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국제적 여론 악화를 잠재우는 데 주력한 나머지 실무적 업무 영역인 번역에서조차 ‘의도된 실수’가 나온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정부는 대북전단금지법을 둘러싸고 미국 의회 산하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의 청문회 추진 등 국제사회 비판이 커지자, 주요국을 상대로 법안 취지에 대한 소통을 강화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외교부는 주미 한국대사관을 비롯해 외교채널을 ‘풀가동’했고, 통일부도 지난주 약 50여개국 주한 외교단에 대북전단금지법 설명자료를 직접 배포했다.
서호 통일부 차관,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등 고위급 외교안보 인사들도 잇따라 외신 기고를 통해 대북전단금지법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거쉬먼 회장은 RFA와의 인터뷰에서 서 차관의 지난 20일 북한전문매체 NK뉴스 기고를 들어 “정보 확산을 범죄시하는 것이 서 차관의 주장대로 인권 증진을 ‘더 효과적으로’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북한 사이 분단의 벽을 강화할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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