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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찍어내기 타깃` 美파우치와 韓윤석열의 엇갈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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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에서 극적인 반전 드라마가 완성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찍어내기' 대상 관료였던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을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차기 정부에서 계속 일해줄 것을 요청했고, 파우치 소장이 이를 수락한 것이다.

파우치 소장은 4일(현지시간) NBC방송 '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유임해달라는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요청을 받고 그 자리에서 수락했다고 말했다.

앞서 바이든 당선인은 전날 CNN방송과 인터뷰에서 파우치 소장을 만나 유임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차기 행정부에서 자신의 최고 의학 자문역으로 임명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또 파우치 소장이 안전하다고 하면 자신도 기꺼이 코로나19 백신을 맞겠다면서 그에 대한 신뢰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는 파우치 소장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소속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마스크 착용, 봉쇄 조처 등 방역 대책을 놓고 사사건건 대립했다.

파우치 소장은 지난 4월 부활절 때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발병 완화 조치를 더 일찍 했더라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경질 1호 관료로 지목돼 왔다. 부활절 인터뷰를 접한 트럼프 대통령은 "파우치를 해고하라"(FireFauci)는 해시태그가 달린 트윗을 리트윗하기도 했다.

최고 통치권자의 심기를 건드렸던 파우치 소장의 부활은 미국 정치에서 정책 신뢰의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에 다른 입장을 보인 관료를 재기용함으로써 바이든 당선인은 세 가지 이익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코로나19 재확산과 백신의 안전성 문제에서 권위를 갖춘 관료를 유임시켜 보건정책의 '신뢰도'를 높이는 한편, '새 대통령은 자신과 뜻을 달리하는 반대 목소리도 경청할 것'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제시할 수 있다. 분열이 아닌 통합의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임기 말 보복 인사를 자제하라'는 경고를 날린 셈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얼마 전 자신의 지시에 응하지 않은 마크 에스퍼 국방 장관을 해임시키고 국방부를 대행 체제로 만들어 안보를 위태롭게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정치 효과를 만든 파우치 소장의 부활 사례는 한국 정치에서 찍어내기 타깃이 된 윤석열 검찰총장 상황과 대비를 이룬다.

정권 실세에 대한 공격적 수사로 찍어내기 1호 관료가 된 윤 총장은 최근 법적 투쟁을 통해 자력갱생으로 현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이 검사징계위원회를 주도적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한 검사징계법에 현직 검찰총장이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 초유의 대립 사태는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검찰 개혁의 명분과 정책 신뢰도에 균열을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한 관료의 거취 문제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에도 힘이 부치는 국민들에게 국론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코로나19 백신과 보건 정책의 신뢰성을 강화하기 위해 파우치 소장을 재기용하는 바이든 당선인의 용병술까지 기대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최고통치권자가 통합과 법의 지배를 존중하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원로 정치학자이자 진보학계의 큰별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 7월 한국정치연구 투고문('다시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한다')에서 문재인 정부의 개혁정책이 한국민주주의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 간 열정의 충돌을 동반하는 '감정의 양극화'를 만들고 '법의 지배'가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당시 투고문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 법적 충돌이 발생하기 이전에 작성됐다.

또한 외신들은 한국의 검찰총장 직무정지 이슈와 4일 단행된 개각 발표에 대해 '검찰총장 직무정지 투쟁으로 개혁공방 격화'(니혼게이자이 신문), '정책 어젠더 위기에 처한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장관들 교체'(로이터 통신) 등의 제목을 달아 보도하고 있다.

국격을 떨어뜨리는 혼란의 양상으로 글로벌 매체들에 한국이 묘사되고 있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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