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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란 법언(法諺)이 있다. 독일의 법학자 엘리네크가 한 말인데 법은 도덕을 기초로 형성된 것이며, 법의 규율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부도덕하다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만하다 해서 항상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형법에는 '보충성의 원칙'이란 것도 있다. 형법은 다른 사회규범이나 법적 제재와는 달리 형벌이라는 가혹한 법익 침해를 통하여 법익을 보호하기 때문에 국가의 형벌권 발동을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으로부터도 법익을 침해당하고 또 다른 사람의 이익을 침해하며 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를 모두 처벌하는 것은 오히려 시민사회의 자율을 침해할 소지가 많다. 위법행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형사처벌은 최소한에 그쳐야 하며 가급적이면 민사책임이나 징계책임 등으로 제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구나 국가의 형벌권은 언제나 공평하게 행사될 것이라 기대할 수도 없다. 특히 첨예하고 큰 이해관계가 결부된 사안에서 음험한 동기 하에 또는 편견이나 공명심에 의해 형벌권이 자의적으로 발동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목도한 바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점점 더 형사처벌 과잉 사회로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정치 분야만 해도 역대 대통령 11인 중에서 2명이 현재 수감 중이며, 전직 대통령 여러 명이 수감되었다가 사면되었으며 검찰 수사를 받는 와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통령도 있다. 경제 분야에서도 많은 기업인들이 배임죄로 인해 형사처벌을 받았거나 재판을 받고 있다. 일반인들도 돈을 못 받으면 민사소송보다는 형사고소를 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 시점에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지고 싶다. 우리사회는 혹시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에서 형사책임을 묻고, 민사상 배상책임으로 다루어야 할 사안을 형사처벌로 갈음하고, 경영상 책임을 추궁해야 할 사안에 국가 형벌권을 동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형사처벌의 과잉 사회를 막기 위해서는 입법, 사법 영역에서 광범위한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모호한 불특정 개념으로 종종 논란이 되는 배임죄, 직권남용죄, 국고손실죄 등은 손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형사책임을 대신하는 다른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여야 한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정치적 책임을 보다 원활하게 추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며, 경제와 기업 분야에서는 무능한 경영자, 대주주를 구속시키지 않더라도 주주권을 활용해 경영책임을 철저히 추궁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고 경영권 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는 피해자들이 형사고소를 하지 않더라도 민사책임을 원활히 추궁할 수 있도록 증거개시제도,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고 판결금의 집행을 위한 채무자 은닉재산 파악도 보다 용이하게 해야 한다.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으며 범죄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공정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형사처벌 과잉 사회는 소신주의보다는 보신주의를, 모험적 경영보다는 안전 제일주의 경영을, 원만한 타협보다는 극단적인 갈등으로 이어지기 쉬우므로 경계해야 한다. 악인이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는 환상이기에 우리의 법제도는 불완전한 너와 불완전한 나를 전제로 고안되어야 한다.
김주영 변호사ㆍ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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