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이순자씨는 유죄 예상한 듯 고개 떨궈
30일 오후 광주 동구 지산동 광주지법에서 '전두환 회고록' 형사재판 1심 판결을 지켜본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이 기대했던 법정구속 판결이 나오지 않자 오열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회고록에서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이날 1심 재판부로부터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시간에 불과했던 선고 공판 시간도 그에겐 길었던 것일까. 법정에 피고인으로 나올 때마다 꾸벅꾸벅 졸았던 그는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유죄가 선고되는 순간조차 잠에서 덜 깬 듯, 알츠하이머에 걸린 '(내란목적)살인자'의 얼굴은 멍한 모습이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인정하고, 사죄하라"는 광주시민들의 성난 외침에도 '내가 왜?'라는 듯한 표정을 짓던 그였다. 그러나 이날 역시 그의 입에서 "사죄"라는 말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30일 오후 3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사건 선고 공판이 열린 광주지법 201호 법정.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1시간 동안 판결 이유 설명문 낭독을 마친 김정훈 형사8단독 부장판사는 전두환 피고인에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지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유행 탓에 70여명 만이 방청하던 법정엔 이내 무거운 정적이 깔렸다. 재판 내내 의자에 몸을 깊게 파묻고 헤드셋(청각보조장치)을 쓴 채 꾸벅꾸벅 졸던 전 전 대통령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며 일어서더니 김 부장판사를 응시했다.
"피고인 전두환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 김 부장판사가 형(刑)을 선고했지만 전 전 대통령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김 부장판사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반면 전 전 대통령의 신뢰관계인으로 피고인석에 나란히 앉은 부인 이순자씨는 유죄를 예상이라도 한 듯 고개를 떨궜다. 앞서 김 부장판사가 "과거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으로서 5·18이라는 아픈 현대사에 대해 큰 책임을 지게 된 데 대해 실망감을 지울 수 없다. 피고인은 지금까지도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성찰이나, (피해자들에게)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는 점 등을 고려해 징역형을 선택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힌 터였다.
김 부장판사는 선고 직전엔 "불행한 역사는 망각이나 의도된 회피로 치유될 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5·18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피고인이 판결 선고를 계기로 마음 아파하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받고,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단초를 마련하기를 바란다"고 훈계하기도 했다.
18차례 걸친 공판 과정에서 "5·18 때 광주 하늘에서 단 한 발의 총도 쏜 적이 없다"고 헬기사격을 부인하던 전 전 대통령의 변호인 정주교 변호사는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재판 시작 15분 전에 법정에 도착한 그는 평소와 다름 없는 무덤덤한 모습이었지만 김 부장판사가 5·18 당시 헬기 사격의 실체 등에 대한 판결 이유를 읽어내려가자 얼굴이 점점 굳어져 갔다.
공판이 끝나자 방청석에선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날 재판을 앞두고 '유죄 선고냐, 무죄 선고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았던 터였다. 법정 밖 풍경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이 법원을 빠져나갈 때 5· 18 유족들이 "전두환을 구속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전 전 대통령을 고소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는 "긴 시간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전두환에게 5·18역사 왜곡을 일삼았던 지만원과 같은 수준의 형량이 주어진 것은 아쉽다"며 "그러나 오늘 유죄 판결은 5·18 진상규명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3일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때 계엄군의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에게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다"라고 주장했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