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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혐한`이라던 베트남이 한국어 제1외국어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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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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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짜오 베트남-117] 얼마 전 친하게 지내던 베트남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이 지인은 부부가 모두 베트남 안에서 한국계 은행을 다닙니다. 베트남의 중산층으로 교육열이 상당히 높고 두 아이 교육에도 많은 것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영어도 수준급입니다. 다만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는 이유로 한국어 실력은 일천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너는 한국계 은행에서 일하고 있으니 한국어를 배워놓으면 추후 승진 등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최근 들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어로 된 간단한 문장을 쓸 정도는 되었습니다.

이 지인은 올해 한국 나이 9세인 첫째 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생각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 교육을 받은 이 딸은 또래치고는 발군의 영어 실력을 쌓아놓은 상황입니다. 베트남 내 한국 기업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이 지인은 '제1외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근데 베트남 안에서 베트남 아이들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칠 뾰족한 공간이 없는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는 또 연락이 와서 "한국 안에 외국인 아이들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형 학원이 있느냐. 만약 있다면 내가 직접 한국으로 가서 학원을 둘러보고 노하우를 얻어가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렇게 배운 노하우를 토대로 베트남에서 학원을 열면 대박이 날 거란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이같이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요를 베트남 정부도 인지한 것 같습니다. 아마 내년쯤에는 베트남 내 학교 정식 교육과정으로 한국어가 포함될 예정입니다. 최근 응우옌또쭝 베트남 국가외국어계획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은 "위원회는 제1외국어로서 한국어 교육과정 설계를 검토하고 있다. 큰 문제가 없으면 내년에 이런 교육과정이 통과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베트남에서 제1외국어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제2외국어는 중등학교부터 선택 과목으로 가르치는 외국어를 의미합니다. 제1외국어로 한국어가 지정되었다는 얘기는 베트남 내 수많은 초등학생들이 선택하기만 하면 한국어를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어는 2016년 중등학교 시범교육 과목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전국 6개 중·고교가 한국어 시범교육 기관으로 지정돼 중·고등학생 1500여 명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 숫자가 기하급수로 늘 전망입니다.

베트남은 한국어가 마치 영어처럼 국제 공용어가 된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하는 전 세계 유일한 국가입니다. 삼성을 필두로 워낙 많은 기업들이 베트남에 나가 있기에 지인 한둘쯤은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베트남 사람이 많습니다. 한인타운에 가면 한국 자영업자들이 창업한 식당의 한글 간판으로 도배되어 있어 여기가 한국인지 베트남인지 착각할 정도입니다.

최근 삼성전자 베트남법인이 베트남에서의 한국어 발전을 위해 약 7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 같은 맥락입니다. 현지 보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 베트남법인은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함께 하노이 국립 인문사회대를 비롯한 베트남 북부지역 6개 대학 한국어과 학생 135명에게 장학금 3만3750달러를 지급했다고 하네요. 삼성은 향후 5년간 베트남 12개 대학 한국어과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지급과 교육 인프라스트럭처 개선에 약 70만달러를 지원한다고 합니다.

길에서 만난 택시기사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를 구사하는 것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베트남 현지 마트인 빈마트 등에 가도 한국산 빼빼로를 비롯한 과자와 신라면 등 생필품을 살 수 있습니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베트남은 한국인으로서 삶에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으면서 베트남의 저렴한 인건비(청소 도우미) 혜택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현지에 나가 있는 주재원들 부인은 한번 베트남에 나가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어한다는 얘기를 흔히 하곤 하지요.

한국과 베트남 간 관계는 지난해 박항서호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연일 승전보를 울릴 때까지만 하더라도 양국 수교 이후 가장 밀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발 코로나19가 막 퍼져나가는 찰나 전염병이라면 알레르기 정도의 공포를 느끼는 베트남 정부가 한국 항공기를 바다 위에서 회항시키는 사태가 발생하며 금이 가기 시작했죠. 이후 양국 네티즌들이 '키보드 배틀'을 벌이면서 양국 간 심리적 거리가 예전 같지 못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1외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베트남은 한국 기업 입장에서 한국어를 아는 현지 직원을 손쉽게 뽑을 수 있는 장점을 더 살릴 수 있는 곳으로 도약할 것입니다. 감정싸움은 감정싸움이고 계산기를 두드릴 때는 두드려야 한다는 것이죠. 한국 입장에서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진출을 확대하고 싶은 한국 기업이 베이스캠프를 꾸리기에 더없이 좋은 지역입니다. 실제 베트남 통신사인 비엣텔 등은 동남아 일대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지요. 지엽적인 이슈에 매달려 감정싸움을 하는 것보다는 거시적 관점에서 베트남을 축으로 동남아 전역으로 어떻게 시장 확대 전략을 짜면 좋을지 고민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하노이 드리머(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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