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모 만화가가 16일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작업실에서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경은 김 작가의 대표작인 '대털'의 캐릭터들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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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구글에 이 문장을 검색해봤다. 비타민ㆍ치킨 광고부터 언론사 채용 공고, 학교 축제 홍보, 게임 영상… 등등 셀 수없이 많은 콘텐트가 쏟아진다.
어디선가 한 번쯤은 접했을 이 문장은 성인극화로 이름을 날린 만화가 김성모 작가가 2002년 일간스포츠에 연재한 ‘대털’에 나왔다. 김 작가의 말처럼 “당시엔 이 정도로 회자된 것은 아니었는데” 시대를 건너 뛰어 온라인 시대의 ‘밈’(meme·화제가 되는 콘텐트를 인터넷 상에서 패러디하며 갖고 노는 현상) 문화와 결합돼 날개를 달았다.
김 작가는 ‘대털’ ‘럭키짱’ 등 많은 히트작을 낸 인기작가임에도 이제는 작품보다 “더 이상의…”를 만든 창작자로 더 유명해졌다. 정작 김 작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16일 부천에 있는 김 작가의 작업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가 등장한 '대털'의 장면과 패러디물 [유튜브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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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는 대사는 어떻게 만들게 된 것인가.
A : 범죄에 이용되는 적외선 굴절기 만드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걸 설명하려고 했는데 순간 ‘어, 이거 하면 안 되겠다. 누가 만들 거 아니야’ 싶었다. 그래서 “더 이상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라고 적고는 마땅히 넣을 그림이 없어서 주인공 얼굴을 넣었다.
A : ‘빨판’이라는 제비족 만화를 그릴 때는 우리나라 최고의 제비를 만났다. 여성 1500명을 농락한 최고의 제비다. 삼정호텔에 있던 ‘돈텔마마’라는 클럽에서 만나 “문하생으로 들어가 한 번 배워보겠다”고 했다. 온갖 기술을 배웠는데 지금 현역으로 뛰어도 자신 있다.(웃음) 그러니까 나의 취재 방식이 건달을 취재한다, 그러면 (내가) 건달이 된다. 사채 갖고 (작품을) 해볼까 하면 가장 좋은 건 뭘까. 내가 당해보는 거다. 5000만원 빌려서 안 갚았지. 그러니까 얼마나 위험했겠나. 주로 밑바닥 건달이나 호스티스, 웨이터, 사채, 도둑, 강도, 살인범, 이런 사람들 취재하다 보니 칼도 많이 맞아보고…. 내 외관이 정상 같지만 뼈도 많이 부러지고 날이 추워지면 시리다.
김성모 작가가 16일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작업실에서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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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범죄에 대한 치밀한 묘사로 인기를 끌었다. 취재하면서 감방 영치금도 내줬다고?
Q : 2000년대 많은 인기를 얻은 ‘대털’도 그렇게 취재했나?
A : 우리가 보통 ‘대도’라고 하면 조세형을 치는데, 누군가 ‘진짜’는 따로 있다면서 ‘김강룡’을 만나보라고 하더라. 그래서 청송교도소로 찾아갔다. 그가 법원에 제출하려고 과거 행적을 써놓은 것이 있더라. ‘1000만원 줄 테니 주십쇼’라고 해서 바로 갖고 왔다. 거기서 기술을 많이 배웠다. 예전에 아파트 현관문에 우유통을 통해 기계를 넣고 모니터로 보면서 문을 여는 범죄가 있었다. 그게 제 만화에서 나오고 1주일 만에 (사건) 기사가 터져서 난리가 났다.
Q : 매춘을 다룬 ‘용주골’의 현장 취재 과정에선 맞기도 했다고 들었다.
Q : 용주골에서 직접 살았다는 건가?
A : 내가 가서 만나봐야 이야기기가 나올 거 아닌가. 스토리라는 건 작가가 직접 들어야 한다. 사업 망한 사람으로 위장해 숙박업소에서 두 달 동안 업소여성, 포주, 건달들과 이야기하면서 살았다. 두 달 뒤에 돌아와서 ‘용주골’을 냈는데 대박이 났다. 나의 최고 히트작은 ‘럭키짱’도 ‘대털’도 아니다. ‘용주골’이다. 당시 보통 히트를 치면 단행본이 2만 부 정도 나갔는데 ‘용주골’은 10만부 이상 나갔다.
김성모 작가가 16일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작업실에서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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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맞다. 내 인생이 그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가 도망갔다. 배고파 못살겠다고. 3남매가 있는데 아버지는 파출소도 잡혀가고…. 동생들이 여덟살, 여섯살인데 얘들을 데리고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시장에 가면 애들이 솥단지 앞에서 서 있었다. 만두 냄새 맡는다고…. 그런 걸 보면서 무시, 배고픔, 처절함을 느꼈다.
Q : 근성을 강조하는데 실제 성격도 그런가
A : 한 번은 아버지가 파출소에 잡혀갔다. 2주 동안 돌봐줄 이가 없고, 집에 먹을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데 동생들과 작전을 짰다. “우리가 먹고살려면 2주를 버텨야 한다.” 그래서 동선을 짜고 슈퍼에서 라면을 딱 움켜잡고 도망쳤다. 당연히 잡힐 걸 아니까 골목의 코너를 돌면서 3개를 건너편에 던진다. 그럼 담 옆에 대기하던 동생들이 그걸 받아 집에 가서 끓이고 나는 나머지만 갖고 잡힌다. “아저씨 잘못했어요”라고 빌면서 맞다가 집에 보내주면 집에 와서 라면 끓여놓은 걸 먹었다. 이렇게 2주를 버텼다. 그래서 내 만화에는 엄마가 안 나온다. 아버지만 나온다.
Q : 그래도 작품 속 주인공들은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A : 자식 셋을 혼자 키웠다. 얼마나 힘든지 내가 커보니까 알겠더라. 골방 2평짜리에서 4명이 살았는데 아침마다 일어나 밥을 해 먹였다. 소풍날이면 어디서 빌려왔는지 과자를 담은 비닐봉지를 줘서 보내고, 저녁엔 칼국수를 해줬다. 그리면서 ‘절대 기죽지 마라’고 교육했다. 인생에서 아버지에게 배운 게 정말 많다. 그런데 어떻게 아버지에 대해 욕을 하겠나. 아버지 같은 사람을 나는 인생에서 본 적이 없다.
김성모 작가가 16일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작업실에서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경은 김 작가의 대표작인 '대털'의 캐릭터들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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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여전히 80~90년대 스타일의 극화체를 고수한다. 웹툰 시대엔 변해야 하지 않을까.
A : 확실하게 단언하는데 만화를 이끄는 건 극화체다. 극화체는 사람의 체형이나 배경, 스토리를 사실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 ‘신세계’ ‘대부’ 같은 굵직굵직한 영화들이 열광 받는데 만화도 마찬가지다. 나는 작품에서 인간의 절망, 좌절 그리고 거기서 피어오르는 희망, 도전, 성공, 또 파멸의 이야기를 그린다. 대중은 그런 스토리에 열광한다.
Q : 그런데도 극화체 작품이 안 나오는 이유는 뭘까?
A : 말은 쉬운데 그리다 보면 다른 작화보다 두세배의 시간이 걸린다. 예전에는 작가 밑에 문하생들이 함께했는데 요즘 신인 작가들은 1주일에 한 편씩 마감하면서 혼자서 다 해야 한다. 그렇게 처음부터 혼자 하면 그림이 늘지 않는다. 과거 문하생 시절엔 작가들의 뒤처리 작업을 해놓고 남는 시간에 내 원고를 만들어봤다. 선배들이 만든 것을 보면서 똑같이 해보기도 하고, 데생도 따라해 보고…. 좋은 원고를 보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3분의 1은 늘어난다.
Q : 작품의 스토리가 요즘 세대의 정서와는 잘 안 맞을 수 있다.
A : 나는 요즘 남자들이 불쌍하다. 너무 위축되어 있다. ‘남성’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다.
Q :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나
A : 2018년 ‘트레이싱’ 사건이다. (2018년 네이버 웹툰에 연재하던 ‘고교생활기록부’가 일본 만화 ‘슬램덩크’의 작화를 따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 작가는 이를 인정했다.) 완전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금까지 쌓아놓았던 것이 다 무너졌다. 문하생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는데 어쩌겠나. 지금도 같이 일한다. 같이 해온 세월이 뭐든 용서하게 하더라.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하고. 그 이후에 매일 연재를 결심했다.
김성모 웹튠작가가 16일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작업실에서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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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작품을 매일 연재하는 초강수를 뒀다. 연재를 쉬는 게 낫지 않았을까.
A :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 양아치 아니다. 진짜 만화가다. 트레이싱 사건으로 밑바닥에 떨어졌지만, 원래는 이렇게 열심히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당시 네이버에 ‘고교생활기록부’를, 카카오페이지에 ‘고교권왕’을 연재했는데 한 달에 마감을 40번 했다. 근성으로 버텼다.
Q : 인생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A : 천하제패다. 극화체로 일본의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우뚝 설 수 있는 작품을 한번 내고 싶다. 뭐든 몰빵을 해서라도….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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