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와대 주요 인사가 일부 언론 보도나 논란 등을 가짜뉴스라 지칭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이들이 지목한 사안 중 일부 거짓이나 과장된 뉴스가 있지만, 허위로 보기 어려운 것들도 상당수 있어 “의도적으로 가짜뉴스 프레임을 펼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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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민 툭하면 “가짜뉴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4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의의 대통령비서실ㆍ국가안보실ㆍ대통령경호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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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중심에 선 이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노 실장은 지난 13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국민에게 (살인자라고) 하지 않았다. 어디서 가짜뉴스가 나오나 했더니 여기서 나온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노 실장이 8·15 집회 주동자들을 ‘살인자’라고 지칭했다”고 말한 데 대한 답변이다. 노 실장은 “허위로 물으면 안 된다. 속기록을 보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4일 청와대 국정감사 속기록엔 노 실장의 ‘살인자’ 발언이 그대로 적혀 있다. 노 실장은 당시 “도둑놈이 아니라 살인자입니다, 살인자, 이 집회의 주동자들은”(속기록 64쪽)이라고 말했다. '집회 주동자=국민' 논란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집회 주동자가 ‘국민’이 아니면 다 '외국인'이었다는 얘기냐”라고 꼬집었다.
앞서 노 실장은 지난 4일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라임 측 금품 수수 의혹과 관련, 청와대가 검찰에 출입기록 제공을 거부했다’는 취지의 언론보도(10월 13일)에 대해 “가짜뉴스다. (기록을) 이미 제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해당 보도 이전엔 검찰에 출입기록을 제공하지 않았다.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는 문 대통령 지시는 보도 다음날(10월 14일) 나왔다. 이런 기록을 근거로 해당 언론사가 노 실장의 발언을 ‘가짜답변’이라고 지적하자, 노 실장은 뒤늦게 “확인을 해 보니 제출 시점이 보도한 이후였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바로잡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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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내부 갈등설, 인국공 논란도 “가짜뉴스”
與, 불리하면 ’가짜뉴스“...확인해 보니.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
청와대 명의로 언론보도에 ‘가짜뉴스’ 딱지를 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8월 10일에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조원 청와대 민정수석이 청와대 고위 참모들의 2주택 처분 문제로 언성을 높여 싸웠다’는 보도에 대해,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다음날 “한 마디로 가짜뉴스”라고 공식 논평했다.
하지만 보름 뒤(8월 25일) 열린 국회 운영위에서 김외숙 청와대 인사수석은 “노 실장과 김 수석이 싸우는 자리에 있었다던데, 2주택 처분 때문에 싸운 게 맞느냐”는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 질문에, 한동안 망설이다 “언쟁을 한 적은 있지만 싸운 적은 없다”고 답했다. 둘 사이에 언쟁이 있었음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여권에 불리한 상황에 대해 “가짜뉴스 때문”이라고 해명했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정규직 전환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6월, 청와대는 “논란을 가짜뉴스가 촉발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일부 언론이 검증 없이 ‘로또 채용’이라고 보도해 논란이 확산됐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여당에서조차 “청년들의 분노는 ‘나의 일자리’ 문제를 넘어 불공정에 대한 문제 제기다. 정부 노동정책이 제대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원욱 의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와 관련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팩트에 기반한 비판에 반박하기 힘들 때 여권이 손쉽게 꺼내 드는 카드가 바로 가짜뉴스 프레임"이라며 "일단 가짜뉴스로 규정하면 여당 지지자들끼리 SNS 등을 통해 정보가 공유돼 일단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짜뉴스가 아닌 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가짜뉴스로 몰고 간다는 설명이다.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박성민 대표는 최근 치러진 미국 대선 사례를 들며 “장기적으로 여권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도 기존 지지층인 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그럼에도 선거에서 패한 건 코로나 대응 등에 대한 언론 비판을 ‘가짜뉴스’로 치부한 탓에, 피로감을 느낀 중도층이 부분적으로 이탈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국내에서도 가짜뉴스 낙인찍기가 계속되면 민주당도 중도층 이탈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한영익·하준호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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