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화랑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작가 최영욱. [이승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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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달항아리 그림 앞에 서자 머릿속이 하얘진다. 둥글고 넉넉한 자태를 바라보니까 세상사 시름도 까맣게 잊게 된다. 한참 '달멍(멍하게 달을 보다)'을 하면 가슴속 응어리까지 스르르 풀린다.
카르마(karma) 201911-47(180x160cm) |
최영욱 작가(56)의 달항아리 그림 연작 '카르마(Karma·업)'가 코로나 시대 세계인을 위로하고 있다. 국내 미술 불황에도 그의 작품이 예년보다 2배 팔리고 있다. 국경을 넘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헬렌J 갤러리에서 지난달 2일 개막해 이달 27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전시작 25점이 완판돼 7점을 더 배송했다. 미국인들이 현란한 팝아트 작품과 달리 조용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달항아리에 빠져들고 있다는 증거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미국 도심을 떠나 찾는 휴양림 같은 그림이라는 호평을 듣고 있다. 물론 그보다 먼저 2011년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설립한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그의 작품 3점을 사면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최영욱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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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화랑 개인전에서 만난 작가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공포를 달항아리에 담으면서 작업했다. 옛부터 달항아리는 걱정을 품고 복(福)을 준다는 속설이 있다. 달항아리의 위풍당당한 자태가 코로나 방역에 성공한 한국 이미지와도 통한다"고 말했다.
그도 달항아리의 당당한 기운에 반해 지금까지 그려오고 있다. 2008년 11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한국관에서 30분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달항아리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겉모습은 둥글고 수더분하지만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늠름한 달항아리처럼 살고 싶었다.
12년간 일기처럼 달항아리를 그리고 있지만 300여 년 역사를 지닌 달항아리 미학을 캔버스에 담기에는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한다. '왜 달항아리만 그리냐'는 주변의 시선도 있지만 달항아리 안에서 변화를 추구하고 싶다. "대부분 작가들이 10년 주기로 하나의 소재에 천착하는데 아직도 제 달항아리 그림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지금까지 달항아리 500여 점을 그렸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죠. 그래도 사람들이 내 그림이 편안하고 위안을 준다고 해서 보람을 느낍니다."
카르마(karma)20205-21(50x210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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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장에서 예전에 보지 못하던 달항아리 작품을 발견할 수 있다. 크고 작은 달항아리 6개를 그린 작품으로 마치 단란한 가족처럼 보인다.
가는 붓과 연필로 그린 빙열(氷裂·도자기 표면에 난 균열)도 예전보다 치밀해진 것 같다. 복잡하게 교차하는 선(線)은 인생 길이자 인연으로 제목 '카르마'와 연결된다. 동양화 채색 물감으로 그린 세월의 얼룩이 산맥이나 바다를 떠올리게도 한다. 작가는 "보는 대로 느끼면 된다. 그림은 관객이 완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림이지만 도공처럼 백색 돌가루와 제소를 캔버스에 올린 후 사포로 갈아내는 과정을 70~80번 반복해 완성한다. 실제 달항아리처럼 입체감과 깊이감이 생기는 비결이다. 작가는 "달항아리를 똑같이 그리는 게 아니라 달항아리처럼 살고 싶은 내 얘기를 담고 있다. 매일 10시간 그리고 나면 하루가 지나간다. 코로나19 또한 지나가리라"고 말했다.
전시는 25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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