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희, 미국 지지로 후보 사퇴 결정 못해
열흘 넘게 입장 표명 없이 칩거 중
"사무총장 선거 완주해도 득 안돼"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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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이 확정되면서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에 나선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겐 후보 사퇴 선택지만 남았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미국 정권 교체로 유 본부장이 유일하게 기대던 미국의 지지 여부가 불투명해졌고, 차기 사무총장 선출이 늦어질수록 그 혼란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유 본부장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8일 외신에 따르면 WTO 사무국은 9일 개최할 계획이던 차기 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일반이사회 특별회의를 당분간 연기하기로 했다. WTO 측은 당초 이번 회의에서 회원국 다수 지지를 얻은 나이지리아 후보를 차기 사무총장으로 단독 추천하려 했다. 그런데 WTO 측은 미 대선 개표 과정에서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회의 일정을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반대로 난항을 겪던 차기 WTO 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컨센서스(의견 일치) 과정이 바이든 행정부에선 쉽게 풀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서다. 글로벌 협력 체제를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나이지리아 후보를 지지할 거라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에 따라 WTO 사무총장 선거에 나선 유 본부장이 조만간 후보 사퇴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우리 정부는 유 본부장의 당선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회원국 다수 의견을 존중해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려했으나, 한국이 선거에 남기를 바라는 미국의 의중을 무시할 수 없어 고심을 거듭해왔다. 실제 유 본부장은 지난달 28일 발표된 사무총장 최종선거 결과에서 나이지리아 후보에 뒤졌지만, 그로부터 열흘이 넘은 이날까지 아무런 공식입장 표명 없이 칩거 중이다. 이번 미 대선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이 확정되면서 유 본부장은 자신의 거취 문제를 트럼프 행정부와 더 이상 상의할 필요가 없어졌다.
WTO 사무총장 선거를 완주하는 게 유 본부장에게 개인적으로 득이 되지도 않는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WTO의 기능 정상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에서 차기 WTO 사무총장 선출이 지연되면 그에 대한 불만은 고스란히 유 본부장에게 쏠리게 된다. 그러면 세계 무역 관계에서 우리나라 통상장관 역할을 수행하는 유 본부장의 향후 대외 행보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어렵게 쌓은 ‘K-방역’ 이미지가 이번 WTO 사무총장 선거로 깎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 본부장의 사무총장 당선을 위해 수 차례의 정상 간 통화 등 전방위 지원을 벌였다. 그런데 유 본부장이 최종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자, 한국이 대통령까지 나서 공을 들이더니 욕심을 부리며 ‘어깃장’을 놓고 있다는 불만이 회원국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는 것이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 본부장이 사퇴할 타이밍을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며 “선거를 완주한다고 해서 차기 사무총장에 선출될 가능성이 높지가 않다”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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