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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역발상이 만든 이건희의 반도체·스마트폰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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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끈 재계 거목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6년 투병 끝에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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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삼성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킨 반도체와 휴대폰 신화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역발상에서 시작됐다. 미래를 내다본 오너의 혜안이 오늘날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다.

■반대 뚫고 '반도체코리아' 세운 이건희
25일 재계에 따르면 반도체 사업의 가능성을 본 이 회장은 지난 1974년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산 직전의 한국 반도체를 인수했다.

당시 한국에서 반도체는 불모지나 다름 없었다. 이 회장은 반도체 산업이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하며, 한국과 세계 경제의 미래에 필수적인 산업이라 판단하고 밀어 붙였다. 이 회장은 '반도체 박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반도체 사업에 몰입하며 과감하게 투자하고, 끊임없이 기술개발에 매진했다.

이 회장은 직접 발로 뛰었다. 그는 훗날 "반도체 사업 초기는 기술 확보 싸움이었다. 일본 경험이 많은 내가 거의 매주 일본으로 가서 반도체 기술자를 만나 그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배우려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 회장의 선견지명은 결국 통했다. 삼성전자가 1984년 64K D램을 개발한 것이다. '반도체 코리아'의 서막을 알리는 초유의 사건이었다.

이후 1992년부터 삼성전자는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2001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20나노급 4기가 D램 양산에도 성공했다. 64기가비트(Gb) 낸드플래시 개발(2007년), 30나노급 4기가 D램 개발과 양산(2010년), 20나노급 4기가 D램 양산(2012년) 등 잇따라 세계 최초의 기술력으로 경쟁사보다 한 발 앞서 치고 나가는 '초격차' 성공 신화를 계속 이어갔다. 2018년에는 세계 시장점유율 44.3%를 기록, 세계 1위 반도체 생산 기업에 등극했다.

이같은 배경에는 '기술에 의해 풍요로운 디지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이 회장의 확신이 있었다.

과거 전국경제인연합회 세미나에 참석한 그는 "나는 반도체에 미쳤다"며 앞으로 반도체가 삼성은 물론 국가경제를 이끌 것이라 믿었다. 아울러 "언제까지 그들(미국, 일본)의 (반도체) 기술 속국이어야 하냐"며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에 삼성이 나서야 한다. 제 사재를 보태겠다"고 한 일화에서도 반도체에 대한 그의 열정이 엿보인다.

■애니콜부터 갤럭시까지 휴대폰도 1위에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는 불량품을 모두 불태우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엔 품질을 강조한 현수막 옆에 임직원 2000여명이 모였다. 직원들은 회수한 불량 휴대폰 등 15만대를 해머로 부수고 이를 불태웠다. "불량품을 팔다니, 고객이 두렵지 않으냐"며 이 회장이 꾸짖었다.

'애니콜 화형식'은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의 휴대폰 사업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됐다. 화형식 4개월 후 삼성의 국내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50%까지 상승했다. 2002년에는 열고 닫는 클램셸 형태의 ‘SGH-T100’을 내놓았다. 삼성의 기술이 집약돼 당시 '이건희 폰'으로도 불렸다. 단일 모델로만 1000만대 판매를 이끌며 휴대폰 시장의 강자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삼성 휴대폰의 첫 발걸음은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 이 회장은 삼성 최초의 휴대폰 'SH-100'을 선보였다. 당시만 해도 업계에선 삼성이 위협적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국내 시장에선 모토로라의 점유율이 90% 이상이었다. 이 회장은 신사업에 뛰어드는 동시에 기존 휴대폰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어했다.

삼성전자는 1994년에 최초로 '애니콜' 브랜드의 휴대폰 'SCH-700'을 선보였다. 이 회장은 애니콜 브랜드를 내면서 휴대폰 버튼 배치까지 일일이 신경써 지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토로라의 휴대폰은 '통화'와 '종료' 버튼이 번호판 하단에 배치돼 있었다. 이 회장은 통화와 종료 버튼을 위로 올리도록 했다. 통화버튼은 위에 배치돼야 누를 때 더 편하다는 주장이었다. 삼성전자는 '한국지형에 우수하다'는 마케팅으로 판매량을 늘렸지만 당시 점유율은 13%에 불과했다. 광고비를 늘렸지만 점유율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불량률이 11.8%에 달해 품질 논란이 있던 시기였다. '애니콜 화형식'이 품질 논란을 불식시킨 셈이다.

2007년에는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으며 삼성전자는 또 한번 위기를 맞았다. 삼성은 대항마로 '옴니아' 시리즈를 내놨지만 성능과 편의성은 아이폰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은 과감히 옴니아를 단종시키고 '갤럭시S'시리즈를 내놓으며 맞불을 놨다. 갤럭시 스마트폰은 2012년부터 애플을 제치고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2013년에 나온 갤럭시 S4가 이 회장의 마지막 작품이다.

km@fnnews.com 김경민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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