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회장/사진제공=삼성 |
25일 타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한국 재계의 초석을 닦아 놓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 회장은 1987년 취임한 이후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시켰다. 이 회장이 취임 당시 10조원이었던 삼성 매출액이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어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같은 기간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2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무려 396배 증가했다.
이 회장의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로 유명한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은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섰다. 2020년 브랜드 가치는 623억 불로 글로벌 5위를 차지했고 스마트폰, TV, 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월드베스트 상품을 기록하는 등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했다.
이 회장이 1995년 3월 구미사업장에서 '애니콜 화형식'을 통해 삼성 임직원에 경각심을 심어준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당시' 품질은 나의 인격이오 자존심!'이란 현수막을 내걸고 임직원 20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불량 휴대폰 등 총 15만 대를 불태웠다. 이를 계기로 11.8%에 달했던 삼성전자 휴대폰의 불량률은 2%대까지 떨어졌다.
이 회장은 '인재 확보와 양성'을 기업경영의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인식했다.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전격 도입했고, 삼성은 이를 받아들여 '공채 학력 제한 폐지'를 선언했다.
특히 '반도체 사업이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에 부합하다'고 결론 내린 이 회장은 1974년 한국에서 반도체 사업을 일으켰다. 이후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반도체 불모지'였던 한국은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하고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하는 등 2018년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44.3%를 기록했다.
이날 이 회장의 타계는 2014년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이다. 1942년 에서 태어난 고인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이정혁 기자 utopia@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