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정부는 지난 17일 일본 정부·의회 지도자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 봉납을 하자 즉각적으로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내고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논평에서 “정부는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의 정부 및 의회 지도자들이 또다시 공물을 봉납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이어 “신 내각 출범을 계기로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진정한 반성을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 요구에 부응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2017년 12월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회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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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부는 이로부터 일주일 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6·25전쟁을 ‘미국 제국주의 침략’이라고 규정하고 중국이 이에 맞서 북한을 도와 승리했다는 ‘왜곡 연설’을 했지만, 이에 어떤 유감 표명도 항의도 하지 않았다. 6·25전쟁은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 마오쩌둥의 지원 약속을 받은 북한 김일성의 남침 전쟁이다.
외교가에선 “중국의 역사 조작 시도는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 시 주석의 메시지는 간과하기엔 여러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6·25전쟁 참전 기념행사에서 직접 연설한 것은 2000년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이후 20년 만의 이례적인 일이다. 또 중국 관영 언론이 밝혔듯 이날 연설은 미국과 그 동맹에 대한 항전 메시지였다. 미중 갈등이 날로 격화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어떤 각오와 대응 전략을 가졌는지 엿볼 수 있다.
외교부 페이스북 공식 계정에 게재된 외교부 대변인 논평. /조선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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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기자의 질문을 받고 나서야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은 부인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면서도 “관련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만 했다. 외교부는 이렇게 구두로 시 주석의 연설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지만, 대변인 논평 등 활자화한 어떤 자료도 내지 않았다. 기자가 묻지 않았다면 이 같은 외교부의 ‘구두’ 답변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일각에선 “외교부가 ‘왕차관’ 해명 자료를 제작해 여러 채널에 대대적으로 유포하는 노력의 반만큼만 중국의 역사 왜곡 행위에 대응할 수 없느냐”는 말도 나왔다. “일본의 전쟁 미화에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대응 자세가 왜 미화 정도가 아니라 역사를 정면으로 왜곡하는 중국에 대해선 일절 보이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부는 최근 공공외교에 대규모 예산을 편성하고 SNS제작팀도 확충해 사소한 외교 문제나 홍보 거리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내고 있다.
대한민국 외교부 공식 SNS 페이지에 게재된 '왕차관 보도' 반박 자료. /조선일보 |
앞서 외교부는 40대 어공(어쩌다 공무원) 출신 청와대 비서관에서 돌연 외교부 1차관으로 영전(榮轉)한 최종건 차관을 5~6가지의 이유를 들어 ‘왕차관’이라고 한 언론 보도에 대해 1개 사항만 콕 집어 사실과 다르다며 별도의 반박 자료를 제작해 외교부 공식 트위터·페이스북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유포했다.
2018년 9월 평양 프레스센터에서 최종건 당시 청와대 군비통제비서관이 남북 군사합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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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구한 외교관은 “정부가 중국의 역사 왜곡 행위에 계속 이렇게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지난번 시진핑이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실은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한 것과 같은 일이 반복되고 그렇게 믿는 나라나 지도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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