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이건희 회장 취임사. [사진제공 = 삼성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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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 회장은 위기의 순간마다 빠르고 과감한 판단과 장기적 안목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놓았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에 통념을 깬 역발상은 오늘날 삼성이 있게 한 원동력으로 평가받는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83년.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던 삼성이 일본을 제치고 반도체 시장에서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중요한 결정이 계기가 됐다.
1987년 4메가 D램 개발 경쟁이 붙었을 때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개발 방식을 스택(stack)으로 할지, 트렌치(trench) 방식으로 할지 결정을 해야 했다.
스택은 회로를 고층으로 쌓아 올리는 방식이고, 트렌치는 밑으로 파 내려가는 방식으로, 개발진 사이에서도 어떤 방식을 선택해야 할지 의견이 양 갈래로 나뉘었다.
당시 회의에서 전문경영인들이 처음 시도하는 기술인 스택 공법을 도입하는데 주저하자, 이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단순하게 생각합시다. 지하로 파는 것보다 위로 쌓는 게 쉽지 않겠습니까?"
이 회장의 결정은 대성공으로 이어졌고, 당시 트렌치 방식을 택했던 경쟁업체는 스택 방식을 취한 삼성전자에 밀려나고 말았다.
이어 삼성은 1992년 세계 최초 64메가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면서 메모리 강국 일본을 추월하고 세계 1위에 오른다.
엔지니어 감각을 지닌 이 회장은 이후 각종 제품 개발에서도 직접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모토로라가 처음 휴대전화를 내놓은 이후 그때까지 휴대전화의 통화(SEND)와 종료(END) 버튼은 일괄적으로 숫자키 아래에 있었다.
삼성 역시 처음 개발한 휴대전화는 이런 관행을 따라 제작됐다. 그러나 이 회장은 제품을 살펴보다 삼성전자 경영진에게 이같이 지시한다.
"가장 많이 쓰는 키가 통화와 종료 키인데, 이게 아래쪽에 있으면 한 손으로 전화를 받거나 끊기가 불편하다. 두 키를 위로 올리는 것이 좋겠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지시였다. 이후 통화와 종료 키가 위로 올라간 삼성 휴대전화가 출시됐고, 이른바 '이건희 폰'은 소비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김승한 기자 winone@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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