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별세]'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질 위주 경영으로
라인스톱 제도·애니콜 화형식…"불량 없는 삼성"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1942년 에서 태어난 고인(故人)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사진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삼성 임원진들에게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2020.10.25/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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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정상훈 기자 = 25일 타계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승부사' 기질은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났다. 27년 전 '신경영 선언'은 지금의 초일류 삼성을 만든 기틀로 꼽힌다.
이 회장의 '신경영' 배경에는 '국내 제일'이라는 '자만'이 있었다. 당시 삼성은 실질보다 외형 중시의 관습에 빠져 있었다. 눈앞의 양적 목표 달성에 급급한 나머지, 장기적 생존전략과 같은 질적 요인은 소홀히 한 것이다. 일부 선진국에선 '싸구려'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당시 "우리는 자만심에 눈이 가려져 위기를 진정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못난 점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대로 가다간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등허리에 식은땀이 난다"고 지적했다.
이에 고인은 1993년 2월 전자 관계사 주요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 LA에서 전자부문 수출상품 현지비교 평가회의를 주재했다. 삼성이 잘한다고 자부하며 만든 제품들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이 회장은 현지 매장 구석에 처박혀 있던 삼성 제품을 본 뒤 "삼성이란 이름을 반환해야 한다.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다 왜 삼성이란 이름을 쓰는가? 이는 주주, 종업원, 국민, 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통탄했다.
이 회장의 '격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이어졌다. 현지 세탁기 조립 라인에서 직원들이 세탁기 덮개 여닫이 부분 규격이 맞지 않아 닫히지 않자 즉석에서 덮개를 칼로 깎아 내고 조립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 품질고발 사내방송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 임원과 해외주재원 등 200여명을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로 불러 모으고 새로운 삼성을 여는 회의를 주재했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이 회장은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말하며 '삼성 신경영'을 선언했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라, 극단적으로 농담이 아니라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유명한 발언도 이때 나왔다.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에는 양 위주 경영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질을 중심으로 양이 조화를 이루는 선순환의 경영구조를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제품뿐만 아니라 사람의 질까지 높여 '초일류' 삼성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라인스톱 제도'는 불량 추방의 첫 걸음이었다. 생산현장에서 불량이 발생할 경우, 즉시 해당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하고 제조과정의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한 다음 재가동함으로써 문제 재발을 방지하는 혁신적인 제도였다.
이를 통해 전자제품의 경우 1993년의 불량률이 전년도에 비해 적게는 30%, 많게는 50%까지 줄어들었다.
이른바 '애니콜 화형식'으로 유명한 1995년 불량 무선전화기 화형식도 유명하다. 이러한 가시적 조치와 노력을 통해 '불량은 암'이라는 인식이 회사에 자리 잡았고, 현장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부실 요인을 찾아 고치는 풍토가 그룹 전체에 확산됐다.
이 회장은 평소 "기업이 인재를 양성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며, 양질의 인재를 활용하지 못하고 내보내는 것은 경영의 큰 손실"이라며 "부정보다 더 파렴치한 것이 바로 사람을 망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재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후 기회균등 인사와 능력주의 인사, 가능성을 열어주는 인사로 혈연·지연·학연이 끼지 않는 공정한 인사의 전통을 조직에 뿌리 내리게 했다. 연공서열이나 각종 차별조항을 철폐해 시대변화에 맞는 능력주의 인사가 정착되는 계기가 됐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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