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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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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문재인 ‘편 가르기 정치’의 정서적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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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논설위원의 ‘온 리버티(on liberty)’]

노무현의 죽음, ‘복수혈전’이 된 검찰개혁

다수 만능주의 원동력은 40%의 유권자가 가진 ‘분노의 파토스’

노 전 대통령이 꿈꾼 ‘진보의 미래’로 감정의 물길 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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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9일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운구행렬이 서울 시내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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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산 자에게 격정의 파토스를 남깁니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재판정에서 독배를 들었습니다. 500명의 배심원 중 280명이 첫 평결에서 유죄를, 360명이 다음 평결에서 사형을 언도했죠. 죄목은 신에 대한 불경이었습니다.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항목도 추가됐고요.

훗날 플라톤은 스승의 죽음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표현했습니다. 그에겐 인류 최고의 지성인 소크라테스가 어이없게 죽었다는 사실이 평생의 한처럼 남았죠.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은 “이제 각자의 길을 떠나자. 나는 죽기 위해, 여러분은 살기 위해”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느 길이 옳은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라고 했죠.

소크라테스는 언젠가 자신의 무죄가 밝혀지고, 그의 죽음을 통해 문명의 진보가 이뤄지길 바랐습니다. 사실 이날 재판은 소크라테스의 정적인 민주정의 권력자 아뉘토스가 기획했습니다. 그는 30인 참주정을 무너뜨린 인물이었죠. 젊은 시인 멜레토스를 꼬드겨 소크라테스를 고발하도록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상대주의적 철학을 강조하던 소피스트와 대척점에 있었습니다. 진리의 절대성을 강조하고,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설법했죠. 스스로를 현자, 오늘 말로 하면 지식인이라고 칭했던 이들과 요즘 말로 ‘토론배틀’을 벌이며 그들의 무지를 일깨웠습니다.

그렇다 보니 정적도 많았습니다. 결국 아뉘토스가 퍼뜨린 ‘가짜뉴스’는 대중들의 눈과 귀를 홀렸고, 끝내 사형을 받게 됩니다. ‘신에 대한 불경’이라는 추상적 죄목이 내려진 것은 바꿔 말하면 마땅히 지은 죄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재판 당시 소크라테스가 했던 마지막 변론을 들어보죠.

“나는 오래전부터 거짓으로 고발돼 왔다. 그러나 정말 위험한 것은 거짓말로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지도 않은 죄로 나를 비난한 사람들이다. (거짓 고발이기 때문에) 그림자와 싸워야 하고 대답할 자가 없는 상태에서 논박해야 한다. 내가 파멸 당하면 그것은 비방 때문이며, 앞으로 더 많은 선량한 사람을 죽게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스승의 죽음을 지켜본 플라톤



존 스튜어트 밀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문명이 형성된 후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그때까지의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어리석은 대중이 죽였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28세의 청년 플라톤도 분노와 좌절, 고통의 시간을 맞이합니다. 그는 이곳저곳을 떠돌며 방황했죠.

하지만 플라톤은 죽음의 파토스에 자신의 운명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대신 중우정치를 비판하며 ‘철인정치’의 철학을 다집니다. 그 밑바탕은 현실과 이데아를 구분한 이원론적 세계관입니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와 같은 현자만이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진리를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깨친 자만이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훗날 플라톤의 철학은 2000년간 서양 문명을 지배합니다. “플라톤 이후의 철학은 플라톤의 철학에 주석을 단 것에 불과하다”는 화이트헤드의 말처럼 그가 서구 역사에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납니다. 만일 플라톤이 스승의 죽음이 남긴 질문을 학문으로 승화시키지 않고, 복수의 칼을 가는 데 썼더라면 그의 운명과 인류 문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다행히 플라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학문에 정진하고 그 성과가 꽃을 피우면서 소크라테스에 대한 대중의 생각도 달라졌죠. 그가 죽고 14년 뒤(기원전 385년)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 회상록]에서 무죄를 밝힙니다. “그가 불경한 짓이나 말을 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청년들에게도 솔선수범을 보이며 스스로 희망을 품게 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겠는가?”

죽음은 산 자에게 분노와 회한·좌절의 파토스를 남기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은 오롯이 살아남은 자의 몫입니다. 복수로 응징할 것인가, 아니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앞으로 한 발 나아갈 것인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운명의 개척자인 주체의 의지입니다.

오랜 기간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에 맞서 싸운 넬슨 만델라가 집권 후 정적들을 공격하지 않고 화해와 용서로 대응한 것은 ‘통합’만이 국가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과거에 자신을 사지로 몰고 온갖 탄압을 가했던 군사정권의 수장들조차 감싸 안으며 화합을 추구했습니다.

죽음이 남긴 슬픔은 피할 수 없지만, 죽음을 무엇으로 승화시킬 것인가 하는 의지는 자신의 선택입니다.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긴 많은 사람이 복수의 칼날을 가는 고행을 택하지 않고 용서와 화해의 길을 택했습니다. 고전 사극에서처럼 복수는 복수를 낳고, 종국에 남는 것은 파멸뿐이기 때문이죠.

지난 호 ‘온 리버티’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노무현)의 죽음이 어떻게 문재인 대통령(이하 문재인)을 정치로 이끌었는지 살펴봤습니다. 그러면서 노무현과 문재인은 무엇이 비슷하고 어떻게 다른지 자세히 분석했죠.

이번 호에선 문재인 집권 후 한국 사회가 왜 광화문과 서초동, 구적폐와 신적폐, 토착왜구와 주사파로 갈라졌는지 문재인과 문파의 트라우마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즉 노무현의 죽음이 어떻게 문재인과 그 지지자들에게 현재와 같은 선악의 이분법적 의식을 갖게 만들었는지 따져보고자 합니다.



죽음에서 시작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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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4일. 노무현의 빈소엔 집권여당(당시 한나라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찾아왔습니다. 당내 실력자였던 박근혜 의원이 봉하마을에 왔지만, 문상하지 못한 채 차를 돌렸습니다. 그 대신 문재인과 통화만 했죠. 당시 문재인은 “우리가 제대로 모실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 이회창 당시 자유선진당 총재 등도 물과 계란 세례를 맞으며 빈소에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봉하마을에 있던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이들에게 ‘살인마 물러가라’, ‘사람 죽여 놓고 XX하고 있네’ 같은 비난을 퍼부었죠. 이명박 대통령의 조화가 파손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2009년 5월 25일자 12면)

노무현의 장례위원장이던 문재인은 이때까지만 해도 정치활동 없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의 죽음을 계기로 그의 운명은 격랑으로 빠져듭니다. 결국 2010년 노무현재단의 이사장 자리를 맡으며 다시 대중 앞으로 나왔습니다. 특히 당시 야권이던 민주당은 지지층을 결집할 새로운 사람을 필요로 했고, 그 주인공으로 문재인을 낙점합니다.

문재인은 “당신(노무현)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 못하게 됐다”는 말과 함께 정치 발을 들여놓고 2012년 4월 총선(부산 사상)에 출마해 당선됩니다. 6월엔 “보통 사람이 중심이 된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며 공식적인 대선 출마를 선언합니다.

이때 노무현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이 문재인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그는 ‘노짱(노무현)’이 가장 아꼈던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들의 의식 깊은 곳엔 노무현의 죽음을 둘러싼 심각한 트라우마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죽음이 집권세력과 보수 기득권, 검찰 탓이라는 것이었죠.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노무현을 수사했던 검찰은 권양숙 여사와 아들을 강도 높게 조사했고, 언론에 망신스런 정보를 흘려 상처를 주기도 했죠. 예를 들어 “2006년 환갑 때 박연차 전 회장으로부터 1억원짜리 피아제 시계 2개를 선물로 받았다”라거나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권 여사가 시계를 버렸다”는 진술이 새어 나온 것입니다.

이로 인해 노무현은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극단적인 결정을 하는 데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문재인과 측근들은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간 당시 한나라당 집권 세력과 그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검찰에 대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분노를 갖게 됩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괴물’ 검찰을 어떻게 바꿀 것이냐”(조국, [진보집권플랜])는 문제제기가 나옵니다. 문재인과 그 지지자들에게 검찰은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간 ‘괴물’과 다름 아니었던 것이죠. 과거 군사정권을 ‘악’으로 몰고, 자신을 ‘선’으로 생각하며 민주화 운동을 벌였던 사고방식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사람 또한 ‘괴물’이며, 타도해야 할 ‘절대 악’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현재의 집권세력 또한 검찰을 작두 위에 올려놓고 칼춤을 추게 합니다. 정권 초기 특수통 검사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지난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기 시작했죠. 집권세력이 대표로 기용한 칼잡이가 윤석열 검찰총장입니다. 대전고검 검사였던 그는 정권 출범 직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전격 발탁됩니다. 몇 기수를 뛰어넘는 파격 인사였죠. 지난해도 몇 계단을 도약해 검찰총장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당시 문재인은 그에게 “살아있는 권력에 엄정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당부는 공허한 메아리로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정권 실세들의 온갖 비리에 둔감한 채 검찰을 권력의 충견으로 길들이고 있고, ‘청와대 정부’라는 새로운 ‘괴물’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집권세력이 원했던 검찰개혁은 순수한 의미에서 국민을 위한 진짜 개혁이 아니었던 것이죠. 복수를 위해 검찰의 칼을 휘두르다, 이제 그 칼이 자신을 향하니 토사구팽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만일 국민을 위한 수사개혁이었다면 평생 검사 얼굴 한번 볼까 말까 한 일반인들에게 ‘검찰 개혁’을 내세우기보다 ‘묻지 마’ 폭력과 각종 혐오행위 등 민생 범죄를 줄이는 방안부터 고민했을 것입니다.



둘로 쪼개진 한국 사회



검찰에 대한 이중적 태도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한국 사회를 둘로 쪼개놨다는 것입니다. 노무현의 죽음에서 비롯된 분노의 파토스는 사회의 온갖 병폐를 상대 정파의 부패와 비리 탓으로 돌리고, 자신을 ‘절대선’으로 미화하게 됩니다. 선악의 이분법은 국민을 부자와 빈자, 친일과 반일, 적폐와 개혁으로 나누고 사회를 갈라놓기 쉽죠.

적폐청산·토착왜구 같은 표현은 말 자체에 선악의 이분법이 내재해 있습니다. 적폐를 청산한다는 슬로건의 전제에는 자신들의 집권 이전은 모두 악이었다는 인식이 깔렸습니다. 그 결과 청와대와 정부가 야당을 무시하고, 심지어 여당 원내대표(홍영표)가 야당을 쿠데타 세력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물론 성숙한 의회정치 국가에선 보기 힘든 행태입니다.

물론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도 자신들을 미화하려는 모습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상대를 없어져야 할 절대악으로 보진 않았죠. 하지만 현 집권세력은 내 편과 네 편을 나누고, 내 편에서 생긴 문제는 명백한 오류가 드러났다 하더라도 기를 쓰고 감쌉니다. 조국·윤미향·추미애 사건 등이 대표적입니다.

내 편과 네 편의 이분법은 사회 전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합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소득 주도성장입니다. 이것의 발단은 [왜 분노해야 하는가](장하성)였죠. 양극화의 주원인이 소득 격차라는 문제의식은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과 공공부문의 비대화, 감성적인 비정규직 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저변에는 대기업과 상류층이 너무 많은 돈을 갖고 있으니, 저소득층이 분노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장하성의 진단은 과연 옳았을까요. 진보학자 토마 피케티는 ‘불평등의 본질은 자산’이라고 말합니다. 자본소득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크기(r]g) 때문에 일을 통해 버는 돈보다 돈이 돈을 버는 금액이 훨씬 많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임금소득을 인위적으로 늘려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던 ‘소주성’은 사상누각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소주성’의 목표대로 소득 격차가 해소되지도 않았습니다. 저소득층의 일자리는 줄고, 격차는 더욱 커졌기 때문이죠. 통계청 가계수지(4/4분기) 조사에 따르면 하위 20%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2017년 150만원에서 2019년 132만원으로 줄어든 반면, 상위 20%는 845만원에서 946만원으로 늘었습니다.

소득주도 ‘성장’이지만 성장도 거의 없었습니다. 애초부터 성장정책으로는 더더욱 말이 안 됐기 때문이죠. 경제활동의 결과인 소득은 성장의 종속변수입니다.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놓고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는 소주성이 틀린 이유입니다. 답을 정해 놓고 현실을 꿰맞추니 실패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죠.

지난 7월 부동산대책을 내놨을 때도 임대인과 임차인을 나눠 서로 갈등을 벌이도록 조장했습니다. 얼마 전 의사들의 파업 때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의사와 간호사를 갈라치기 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죠.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에서나 쓰던 ‘분할통치(divide and rule)’와 비슷한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속이 뻔히 보이는 진영 정치를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문재인과 집권세력을 호위하는 콘크리트 지지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우리는 선, 상대는 악이라는 신념 아래 조국 사태 등에서 비롯된 ‘공직 윤리’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돌파해야 할 정치적 문제로 본다, 핵심 지지층이 40%나 되니까 자꾸 편가르기를 하는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무엇을 해도 현 정권을 지지하는 강력한 팬덤이 있고, 이에 더해 지난 총선에서 여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면서 모든 걸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자아도취에 빠졌습니다. 부동산 관련 법안을 독자적으로 처리하고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일들이 이를 잘 설명해줍니다. 심지어 투표 결과를 명분으로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을 내쫓으려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40% 팬덤에 의지한 다수 만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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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인근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응원하는 천막(왼쪽) 옆으로 총장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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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공동대표를 지낸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지난 6월 페이스북에서 다음과 같이 윤석열 총장에게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작년 서초동과 여의도는 뜨거웠다. 백만 단위의 시민이 모여 대통령 검찰개혁 의지에 저항하는 윤석열씨에 대한 성토가 거리에 넘쳐났다. 이번 총선에서 집권당이 과반을 넘는 일방적 결과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윤석열 씨에게 빨리 거취를 정하라는 국민 목소리였다.”

이 말은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표를 얻었으니 윤 총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진 전 교수는 즉각 “삼권분립을 무너뜨려 나라를 맘대로 주무르겠다는 욕망”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검찰총장의 거취는 윤석열 개인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검찰총장의 임기를 보장한다는 것은 권력으로부터 검찰의 독립성을 지킨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당이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것에 대해서도 여당은 “총선 민심이 원인 제공일 수 있다, 절대 과반 다수 의석을 저희에게 줬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선거에서 다수표를 얻었으므로 ‘승자독식’이 가능하다는 논리죠. 배려와 존중, 상호견제와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는 사라지고 정치를 오직 ‘이기고 지는’ 이전투구의 장으로 환원시켜 놓습니다.

이 같은 다수 만능주의의 문제점은 지지자를 결집해 권력을 획득하고 정권을 유지하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반대파와의 갈등은 더욱 커진다는 점입니다. 어차피 선거에서 과반만 확보하면 되기 때문에 반대파를 설득하기보다 정치적 팬덤을 강화하는 데 몰두하려 하죠. 나라가 둘로 쪼개지든 말든 말입니다.

지금까지 문재인과 집권세력이 왜 지금과 같은 ‘검찰 개혁’을 추진하고 한국 사회를 어떻게 두 개로 쪼개놨는지 살펴봤습니다. 이를 통해 그 시작점에는 노무현의 죽음이 짙게 배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통해 남긴 진짜 “당신(노무현)의 숙제”([문재인의 운명])가 지금 같은 복수극이었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죽음 후에 중우정치의 문제점을 끄집어내고 문명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만든 소크라테스와 같이 되길 원했을까요. 노무현은 아마도 진보 세력이 이데아론으로 서양 철학의 기초를 만든 플라톤처럼 역사의 주춧돌이 되길 바랐을 것입니다.

노무현은 사후 출간된 저서 [진보의 미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진보 진영도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수용의 정도를 가지고 타협할 것은 타협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다.” 그는 특히 “대체적으로 제3의 길이 대세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럽의 진보주의 정부들도 정부 혁신, 구조조정, 아웃소싱, 민영화, 규제 완화, 노동 유연화, 개방 등을 받아들였다”고 지적합니다.

노무현의 마지막 정신은 진영 논리도, 적폐 청산도, 복수도 아닙니다. 관용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열린 사고를 하는 것이 그가 생각한 진보의 미래였습니다. 보수의 정책이라 해도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고 협력할 것은 협력합니다. 상대를 타도해야 할 악이 아니라 대화의 파트너로 보는 태도를 가져야만 민주주의도, 국가도 발전합니다.



노무현이 남긴 진짜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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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인 2009년 11월 27일 출간된 [진보의 미래]. 생전의 미공개 육필 원고와 육성 기록을 엮은 책이다. / 사진:동녘


만일 문재인과 그의 지지자들이 노무현의 정신을 받아들여 행동으로 옮겼더라면 지금처럼 온 나라가 둘로 쪼개지진 않았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먼저 자신을 찍지 않은 이들까지 끌어안았다면, 그리고 국민을 어떻게 통합할까 고민했더라면 우리 사회의 갈등은 이렇게까지 크진 않았을 것입니다.

과반에 못 미치는 투표 결과를 ‘민주적 통제’라는 허울로 포장해 국민 전체의 뜻인 양 호도하는 일도, 입법과 사법의 영역까지 장악해 민주국가의 기본 틀인삼권 분립마저 무너뜨리려는 시도도 없었겠죠. 권력을 독식하지 않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상대를 인정하고 협치 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생산적인 논의들로 우리 사회의 토론 문화가 정립돼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9년 4월 22일 노무현은 자신의 홈페이지인 ‘사람 사는 세상’에 한 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이었죠. 이 글에서 그는 검찰 수사에 대한 자신의 소회, 지지자들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측근들에 대한 미안함을 밝혔습니다. 생전의 그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마지막 글이었죠.

“형님 이야기가 나올 때는 설마 했습니다. 제가 알고 모르고를 떠나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전직 대통령의 명예와 도덕적 신뢰가 바닥이 났습니다. ‘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 이 말이 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라는 걸 어찌 모르겠습니까? (중략)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결벽증과도 같은 그의 신념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만큼 깨끗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가 노무현은 자신의 목숨보다 그로 대표되는 진보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를 따랐던 많은 시민에게 자신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마치 죽음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했던 소크라테스처럼 말이죠.

노무현이 생각한 진보의 미래는 반대파에게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새 시대의 주춧돌 삼아 미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노무현의 죽음은 그의 진의를 드러내는 데 충분히 인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의 죽음을 이용해 정치하려는 이들 때문에 생전 그의 철학과 가치가 오염되고 있습니다.

모든 혁명과 개혁은 선의를 표상합니다. 하지만 정의와 절대선을 독점하는 태도가 괴물을 만듭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서민을 위한 변호사’로 존경받던 로베스피에르도 그랬죠. 자코뱅당의 실세로, 정적들을 모두 단두대에 올리며 “인권을 억압하는 자를 응징하는 게 자비이며 이들을 용서하는 건 야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얼마 못 가 자신이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처형됩니다. 인간의 역사는 반복되지만, 그것을 막는 것 또한 인간입니다.

※ 윤석만 논설위원/중앙일보 -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 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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