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 2030 슬픈 노마드](下)
투자냐 투기냐…수익률 집착하면 필패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좋아하던 게임도 안 한다. 게임보다 주식이 더 재밌는데 뭐하러. 400만원으로 시작했는데 한 달 만에 600만원이 됐다. 300만원을 더 투자했다. 조금 떨어졌지만, 아직 수익률은 30%대다. 흐름을 따라가려면 낮이고, 밤이고 스마트폰 주식창을 수시로 들여다봐야 한다. 유료리딩방과 유튜브도 필수다. 주변에서 조심해서 하라고 말해주지만, 주식을 하기 전 나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 같다. (33세 직장인 박수현)
저금리 장기화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충격으로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20~30대가 급증하고 있다. 셔터스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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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성공이 나를 폐허로 만들었다. 100만원이 200만원이 됐을 때 운이란 걸 알았어야 했다. 이 좋은 걸 이제껏 왜 안 했나 싶었다. 있는 돈을 다 털어 1000만원을 넣었다. 또 올랐다. 미실현수익이지만 부자가 되는 줄 알았다. 오를 때 파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 걸 뒤늦게 알았다. 시장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물타기(하락 때 추가 매수로 평균 단가를 낮추는 것)가 필요했다. 신용대출을 받았다. 점점 더 무리하는 나를 발견했다. 삼성전자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게 됐다. 바닥 밑에 지하실이란 말이 딱 맞았다. 주식을 하기 전 나로 돌아가고 싶다. (31세 직장인 최지훈)
예·적금으론 답이 없고, 부동산 투자는 최소 수억원이 든다. 갈 곳을 잃은 채 헤매던 20~30대에게 다시 오지 않을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3월 첫날을 2000대에서 출발한 코스피는 19일 1457.64포인트까지 하락하며 연중 저점을 찍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더믹(세계적 대유행) 우려에 따른 단기 급락이었다. 기술적 회복을 기대한 이들이 증시로 몰렸다. 지난 3월부터 9월 말까지 국내 주식시장에서 개인의 순매수 규모는 46조6000억원. 25조6000억원 순매도한 외국인과 기관(19조7000억원 순매도)의 공백을 완벽히 메웠다. 일명 ‘동학개미’의 탄생이다.
동학개미의 탄생...증시로 몰린 개인. 동학개미의 탄생... 증시로 몰린 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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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는 20~30대였다. 올 상반기 증권사 신규 계좌의 60% 이상이 2030이다. 시장의 입장에선 하방을 떠받친 동학개미가 귀인이었겠으나, 한 방을 노린 젊은 투자자들의 삶은 3월 이후 확 달라졌다. 주식창을 열어 아침을 시작하고, 주가의 등락에 온종일 일희일비를 반복한다. 밤낮도 없다. 밤엔 미국시장으로 달려간다. 취업준비생 김진하(29) 씨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얼마 전 미국 테슬라와 머크 주식을 샀다”며 “투자금은 얼마 안 되지만 밤마다 살펴보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해외주식 모바일 앱 ‘미니스탁’은 출시 한 달 만에 이용자 20만명을 돌파했다. 고객의 70%가 20~30대다.
투자는 공격적이다. ‘빚투(빚내서 투자)’도 불사한다. 지난달 증권사의 신용공여 잔고는 17조9023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중 20대 신용거래융자 총액은 8월 말 기준 3798억원으로 지난해 말(1624억원)보다 2174억원(133.8%)이나 증가했다. 전 세대를 통틀어 8개월간 신용융자가 전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은 20대가 유일하다. A증권사 관계자는 “3월 이후 대체로 신용융자가 급증했지만 20~30대 증가율이 두드러지는 게 사실”이라며 “금액은 많지 않지만, 신용융자는 일반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보다 금리가 높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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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주 열풍에도 웃지 못한 2030
빚까지 끌어다 하는 투자라면 자산 배분 차원이 아니라 사실상 ‘올인’ 투자다. 20~30대는 40~50대보다 자산 규모가 작다. 원금이 적으면 수익금보다 수익률에 더 집착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좀 더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데 계속 이기는 투자란 불가능에 가깝다. 익명을 원한 한 애널리스트는 “전반적인 강세장에서 낸 수익을 실력이라고 착각하는 건 위험하다”며 “20~30대는 기대수익률이 높고, 매매 횟수도 많아 욕심을 잘 제어할 수 있는지가 장기적인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적어도 출발선만은 공정한 게임이다. 그러나 실전 투자 단계에선 주가의 등락보다 자산 규모가 위력을 발휘한다. 예수금 중 일부를 투자하는 것과 예수금 전부를 투자하는 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원금이 1억원이 있다면 하락장에서도 1000만원씩 분할 매수하며 보수적인 투자를 할 수 있지만 1000만원밖에 없다면 손실을 감수하거나 빚을 내야 한다. 오를 땐 몰라도 내릴 땐 돈 없이 버티기 힘들다.
돈의 힘은 공모주 열풍 속에도 확연히 드러났다. 올해 기업공개(IPO) 대어의 청약 결과, 1억원을 투자하면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2주, 카카오게임즈는 5주, SK바이오팜은 13주를 받는 데 그쳤다. 자영업자인 서정현(35) 씨는 “부모님 돈까지 빌려서 증거금을 마련했지만, 배정 물량이 적어 겨우 소고깃값 정도 번 것 같다”며 “상장만 하면 오를 게 확실한 데 고액자산가에게 너무 유리한 제도”라고 말했다. 9월 카카오게임즈 청약에서는 30대의 비중이 가장 높았지만 10월 빅히트 청약에서는 40대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저금리 장기화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충격으로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20~30대가 급증하고 있다. 셔터스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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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 환경에서 사실상 내몰린 것에 가깝다고 해도 투자 열풍이 꼭 부정적인 건 아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가 과도한 부동산 편중을 벗어나 자산 증식의 길을 찾아 나선 건 의미가 있다”며 “주식 투자는 표면적으로 재테크 수단이지만 기업에 대한 투자기 때문에 경제 전체로도 긍정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성공 체험을 한 것도 큰 소득이다. 1400대까지 떨어졌던 코스피는 어느새 2300선을 회복했다. 이 기간 투자했다면 어느 정도 이익을 거뒀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장기전이다. 급격한 하락에 따른 반등은 끝났다. 상황을 낙관하긴 어렵다. 코로나19 종식까진 시간이 더 필요하다. 코로나19가 아니어도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가 발목을 잡고, 장기간 막대한 돈을 푼 탓에 거품 우려도 여전하다. 투기가 아닌 투자를 하려면 급격히 변하는 산업 트렌드도 쫓아가야 한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연령대로 생각해보면 장기간 투자할 수 있으니 20~30대는 큰 무기를 하나 가진 것”이라며 “여유자금으로, 오래 갈 기업을 발굴한다는 투자의 기본을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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