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자체 개발해 세계 최초로 공식 승인한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 V’의 국내 생산설이 19일 현지 외신 등을 통해 제기됐지만, 정작 국내 백신 생산 업체는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통상적인 백신 개발 절차와 달리 임상 3상을 건너뛴 채 1, 2상 뒤 곧바로 국가 승인을 받은 만큼 효능이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어서다. 향후 백신 상용화 시 부작용 등이 나타날 경우 생산업체의 신뢰도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우리 정부도 20일 "국내 생산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셀트리온이 개발 중인 코로나19 항체치료제. /셀트리온 |
20일 SK바이오사이언스, 셀트리온(068270),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LG화학(051910)등 국내 백신 생산 업체들에 확인한 결과, 러시아 스푸트니크 V 생산 계획은 현재로서 ‘사실무근’이다. 이날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도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서 이와 관련, "당국에서는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바 없다"고 밝혔다.
앞서 스푸트니크 V 백신 개발을 지원한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국부펀드 직접투자펀드(RDIF) 대표는 19일(현지 시각) 남미 국가들과 협력을 주제로 한 웨비나에 참석해 "올해 12월 (스푸트니크 V) 백신을 대규모로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 인도, 브라질, 중국 그리고 다른 1개 국가에서 (백신을) 생산할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측이 스푸트니크 V 백신의 국내 생산 결정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제 한국은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생산을 위한 기지로 주목 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지난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개최한 글로벌 바이오 콘퍼런스(GBC)에서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생산기지가 한정돼 있는데 한국이 세계 생산기지의 15%를 갖고 있다"며 "개발 속도, 임상 속도, 생산 능력에 있어 (한국이)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는 대표 생산업체로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언급했다.
하지만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스푸트니크 V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입을 모았다. 스푸트니크 V는 아데노바이러스 벡터(전달체) 방식으로, 백신 생산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스푸트니크 V와는) 생산 공정이 다르다"며 "위탁 생산도 없다"고 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 역시 "백신 대신 현재 치료제 위주로 생산하고 동물 세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정란 방식으로 백신을 생산하는 GC녹십자(006280), LG화학 등도 마찬가지다.
SK바이오사이언스도 현재 스푸트니크 V 생산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업체는 이미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미국 노바벡스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 계약을 맺은 상태다. 현재로선 생산량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만큼 다른 업체와의 추가 계약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스푸트니크 V의 안전성과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만큼 국내 업체가 선뜻 생산에 나서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국내 백신 제조업체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해 상용화 시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생산 업체로서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푸트니크 V는 통상적인 백신 개발 절차와 달리 임상 3상을 건너뛴 채 1, 2상 뒤 곧바로 국가 승인을 받은 바 있다.
권 부본부장은 "국내에서는 (코로나19)백신 도입이나 확보와 관련, 가장 우선 시 하는 것은 임상 3상의 중간결과라 하더라도 시험결과, 또 안전성을 우선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김범태 한국화학연구원 CEVI융합연구단장은 "중국, 러시아 등이 개발해 접종한다고 하지만 실제 (효능이나 안전성에 대해) 믿어도 되는 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며 "접종 이후 문제가 될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김양혁 기자(present@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