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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김진국 칼럼] 한쪽 눈을 감는다고 세상이 아름다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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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공무원 피살, 북한, 원전…

어렵고, 책임질 부분은 빼버리고

낙관적 자랑만 하는 건 사실 왜곡

내가 눈 감아도 국민은 보고 있다

중앙일보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진실을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드래곤이 좋아한다는 미국 화가, 조지 콘도는 한 얼굴에 행복·짜증·기쁨·슬픔 등 여러 감정을 그려 넣었다.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심리적 입체주의’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사람이 늘 행복한 것도, 슬픈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복합적인 심리 변화가 그 사람의 본질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비극적인 일을 당해 슬퍼하는 모습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다. 상황적인 배경과 어울리면 그것도 진실이다. 그렇지만 어떤 때는 한쪽의 진실만 전하는 게 거짓말이 될 수 있다. 보일러가 고장난 원룸을 소개한다고 생각해보자. 중개업자가 벽지가 깨끗하다는 사실만 강조했다면, 나중에 책임을 져야 한다. 사실상 속임수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공공임대주택을 저소득층을 위한 영구 임대주택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포함하여 누구나 살고 싶은 ‘질 좋은 평생 주택’으로 확장하겠다”고 말했다. 돈 내고 청약하는 것도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생포’(이번 생에서는 포기)라는 말이 나온다. 임대주택을 공급해주면 얼마나 고마울까. 박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책은 선택이다. 중산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지으면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은 그보다 더 많이 줄어든다. 시장에서도 수백 대 일이다. 임대주택 차례가 언제 돌아올까. 무주택자를 희망 고문하는 ‘로또’가 되지는 않을까. 그런데도 정부는 장밋빛 약속에 드리운 그림자를 절대 말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연평도 해상에서 살해당한 8급 공무원에 대해 “나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피살 공무원의 고등학생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가슴이 저렸다”면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내가 직접 챙기겠다” “해경의 조사와 수색 결과를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짚어보면 필요한 부분만 드러냈다. 유족의 슬픔에 공감하고, 진실을 밝힐 테니 기다리라며 시간을 벌고, 내가 챙기겠다며 책임감을 보였다. 모두 점수를 딸 언급이다. 피살 공무원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어떤 노력을 했고, 왜 구하지 못했느냐는 아들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리 잘해봐야 점수를 잃을 대목이다.

새벽 1시에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한 중대 사안인데, 대통령은 왜 아침에야 보고를 받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이종호 해군작전 사령관은 국정감사에서 북한군과 경고통신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실종 사실은 전달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이 부분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 사건에서 가장 아쉽게 부각되는 것은 남북 간 군사통신선이 막혀 있는 현실…”이라며 통신선이 없어 구조 요청을 하지 못한 듯이 말했다. 중개업자와 같은 거짓말이다.

그는 오히려 이걸 남북관계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이용했다. 김정은의 사과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인기를 얻을 부분, 정부 노선과 맞아떨어지는 대목에는 발 빠르다. 책임을 져야 하고, 기존 정책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될만한 부분은 입을 다문다.

북·미 정상회담 중재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의 낙관적 전언을 믿은 북한이나 미국, 모두 실망했다.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 정부가 미국 측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년 내 비핵화를 할 수 있다는 말에 동의했다”고 전했다고 밝혔다. 북한도 한국의 전언을 믿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가 당황했다. “오지랖이 넓은 사람”, “제 좋은 소리를 하는 데만 습관 돼서…”라고 비난했다.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강조한다. 종전선언을 부각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말이 없다. 기껏해야 “비핵화를 위해 종전선언이 필요하다”고 한다. 종전선언만 하고, 비핵화가 안 될 때 머리에 이고 살겠다는 건지, 맥락이 없다. 수많은 시나리오 가운데 가장 희망적인 것만 내세운다. 어두운 전망은 모르는 체한다. 따져들면 평화를 원하지 않느냐고 한다.

문 대통령은 라임·옵티머스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엄정한 수사에 어느 것도 성역이 될 수 없다. 빠른 의혹 해소를 위해 청와대는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라”고 지시했다. 법무부는 “검찰이 야권 정치인 및 검사 비위에 대해서는 제대로 수사 지휘하지 않은 의혹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성윤 중앙지검장은 윤석열 총장과 각을 세우며 법무부와 한 통속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나.

오늘 감사 결과를 발표한다는 탈원전 문제도 그렇다. 원전의 위험만 강조한다. 재생에너지의 효율은 과장한다. 에너지 수급, 경제성도 탈원전이라는 목표에 맞춘다. 대통령이 결심하면 모든 걸 거기에 뜯어맞춘다.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다.

문 대통령 말은 뭔가 허전하다. 정말 몰라서 그런 걸까. “나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지만 “마음의 빚이 있다” 만큼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 어두운 부분에 눈감으면 세상이 아름답다. 그런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국민은 타조가 아니다. 내가 눈을 감는다고 국민마저 보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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