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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기억할 오늘] 영화 '그린북'만큼 영화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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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빅토르 휴고 그린의 책 '그린북'
한국일보

영화 '그린북'의 모티브가 된, 빅토르 휴고 그린(오른쪽)의 '니그로 여행자를 위한 그린북' 초판.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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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 인종주의자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뒤 그들과 웃으며 악수를 나누는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Donald Shirley, 1927~2013)를 두고 백인 운전기사가 혼잣말처럼 묻는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그 말을 들은 백인 반주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화 '그린북(Green Book)'이 개봉되면서 널리 알려졌지만, 그린북은 미국 '짐 크로법' 인종 분리 차별 시대에 흑인 자동차 여행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식당과 호텔, 주유소 등을 소개한 안내 책자다. 그린북 1936년 초판 서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이 가이드북이 필요 없는 날이 올 것이다. 미국의 모든 인종이 동등하게 대우받고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날이 그날일 것이다." 책은 1966년까지 31년간 매년 1만 5,000부씩, 내용을 수정해가며 출판됐다. 미국 연방의회가 시민권법을 제정한 건 1964년이었다.

이 책의 발행인 빅터 휴고 그린(Victor Hugo Green, 1892.11.9~ 1960.10.16)은 뉴욕 출신 흑인 우편배달부였다. 남부 흑인과 이민자들이 미국 동부로 몰려들던 시절, 그는 그들의 편의를 위해 뉴욕판 그린북을 처음 제작했다. 원제는 '니그로 운전자를 위한 그린북(The Negro Motorist's Green Book)'이었다. 버지니아 출신 아내(Alma S. Duke, 1889~1978)의 조언과 조력도 받았다.

그는 힘겹게 대상지를 확장해갔고, 1947년 은퇴 후엔 출판사를 차렸다. 책은 흑인 인권운동에도 기여했다. 가령 흑인에게도 일찌감치 주유소 운영권을 준 'Esso'는 다른 업체들보다 큰 매출을 올렸다. 식당, 호텔도 마찬가지였다. 적으나마 백인 업주들도 동요했을 것이다. 흑인이 누릴 수 있는 서비스가 늘어나는 만큼 그린북도 점점 두꺼워져갔다.

그린은 1960년 오늘 숨졌고, 그의 아내는 남편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민권법 제정 이후까지 책 출간을 이어갔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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