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욕망과 무지의 도가니…김솔 '부다페스트 이야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진실의 가치는 그것을 만들고 전달하는 자들의 의도가 아니라 그것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에 따라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최대 미덕 중 하나인 '독창성'에서 존재감을 드러내 온 김솔(47)의 신간 장편소설 '부다페스트 이야기'(민음사)에 나오는 대목이다.

화자가 숨 가쁘게 진행돼온 이야기를 막판에 정리하는 부분이면서 소설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과도 맥이 닿는다. 똑같은 사실이라도 기록하는 사람들의 수준 또는 의도에 따라 정반대로 해석될 수 있다는 뜻이다.

처음엔 직업 체험담이나 교과서처럼 느껴지는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욕망의 각축장 안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지는 건 이런 주제 의식을 서사 구조 속에 잘 담아낸 덕분인 듯하다.

김솔은 국적과 시공간을 뒤섞는 특유의 스타일로 잘 알려졌다. 특히 우리나라 작가임에도 유럽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대기업에서 벨기에 주재원으로 수년 동안 근무하며 소설을 썼던 이력이 영향을 많이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 '부다페스트 이야기' 역시 그렇다.

공간적 배경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한 국제학교다. 이 학교가 매년 '인터내셔널 데이'라는 이름을 걸고 사회 저명인사들을 일일 교사로 초청해 직업체험 수업을 하는 이야기가 뼈대를 이룬다.

군인, 요리사, 보험 설계사, 패션 디자이너, 종군기자 등 15명의 일일 교사가 초청된다. 이들의 수업 내용은 기록으로 남아 두 종류의 책으로 발간된다. 하나는 공식 발언만 담은 비매품 책이고, 다른 하나는 화자가 뒷이야기까지 기록해 익명으로 판매하는 책이다.

화자의 시선에서 일일 교사들이 하는 말들은 어린 학생들을 위한 모범적이고 전형적인 내용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학교 일일 교사를 했다는 소문이 나면 사회적 영향력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자기를 한껏 포장한 채 숨겨진 진짜 욕망을 드러낸다.

연합뉴스



이러한 인간 군상과 사회상은 멀리 떨어진 헝가리에 존재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사실은 우리 모습과 다르지 않다. 작가는 외국이란 공간을 빌려 우리 사회를 풍자하고 인류 보편적 문제를 다룬다.

작가가 일일 교사로 등장하는 직업군을 다루는 시각도 예리하고 사실적이다. 예컨대 기자에 관해 그는 이렇게 묘사한다. "그가 실패할 확률은 성공할 그것보다 훨씬 높은데, 이는 질 나쁜 권력자들이 진실을 다루는 기자를 배신자로 매도하도록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종원 문학평론가는 추천사에서 "직업과 접속한 개인의 기묘한 욕망, 사회 체제의 우스꽝스러운 역학 관계, 역사의 아이러니,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연동 중인 우리들의 편견과 무지, 차별 의식 등을 이 소설은 카드처럼 만지작거리며 우리를 바라보고 섬뜩하게 웃고 있는 듯하다"고 평했다.

소설은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모아 중세 영국의 사회상을 보여줬던 제프리 초서의 명작 고전 '캔터베리 이야기'의 형식을 오마주했다고 한다.

김솔은 1973년 광주에서 태어나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 번째', 장편소설 '보편적 정신', '마카로니 프로젝트', '모든 곳에 존재하는 로마니의 황제 퀴에크' 등이 있다. 문지문학상, 김준성문학상,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lesli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