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 展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에서 이 술잔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 19세기 백자 계영배를 컴퓨터 단층촬영(CT)한 결과, 잔 내부에 원통형 관(管)이 있었다. 정해진 양의 술을 따르면 대기압으로 인해 이 관을 타고 술이 스스로 빠져나가는 ‘사이펀(siphon)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백자 양각 매화무늬 계영배'의 내부 이미지. 잔 내부에 관이 있어서 일정량의 술을 따르면 대기압으로 인해 잔 밑에 있는 그릇으로 술이 빠져나간다. 이것을 '사이펀'이라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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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나 고고학이 아니라 보존과학이 주인공인 전시다. 초창기만 해도 국내 보존과학은 초라한 수준이었다. 1976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처리실이 처음 생기고 첫 작업한 유물이 서울 삼양동에서 출토된 금동보살입상(국보 제127호). 집 수리 중 곡괭이에 맞아 발견된 불상이라 옷자락 일부가 파손됐는데 마땅한 보존 기구가 없어 이쑤시개로 접착제를 붙였다. 그로부터 44년 지나 열리는 이 특별전은 보존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성과를 집약해 보여준다. 훼손된 유물을 붙이고 녹을 벗겨내는 수준에서 벗어나 적외선·자외선·엑스선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투과시켜 흔적만 남은 옛 글씨를 판독하고 유물의 내부 구조와 성분을 밝히는 과정을 흥미롭게 펼친다.
평양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1세기 '금제 허리 띠고리'(국보 제89호).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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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89호 '금제 허리 띠고리'를 현미경으로 촬영한 모습. 용의 눈에서 붉은색 안료인 진사가 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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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1세기 ‘금제 허리띠 고리’(국보 제89호·길이 9.4㎝)는 한반도에서 출토된 것 중 가장 오래된 누금(미세한 금 알갱이를 녹여 붙이는 기법) 공예품. 표면에 일곱 마리 용이 꿈틀거리고 주변을 금실과 금 알갱이, 푸른 터키석으로 장식한 허리띠 버클이다. 육안으로도 화려한 이 유물을 현미경으로 촬영했더니 용의 몸통에 촘촘히 붙인 0.3~1.6㎜ 금 알갱이까지 또렷이 보였다. 성분 분석 결과, 용 일곱 마리의 눈에서 붉은 안료인 진사(辰砂)의 흔적도 나왔다. 무려 2000년 세월이 흘러 지금은 벗겨졌지만 황금색 용의 두 눈을 붉게 칠해 이글거리는 기상을 표현했던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특별전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에 나온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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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특별전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에 나온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감마선 이미지.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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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쌍영총 고분 벽화를 적외선 촬영해 흐릿한 그림 속에서 소가 끄는 수레 2대와 갑옷으로 무장한 개마무사, 남녀 30여 명을 찾아냈다.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 인물형 토기’(국보 제91호)가 원래 주전자라는 건 알려진 얘기지만, 그 속에 담을 수 있는 액체 양이 240㏄라는 건 새로 밝혀냈다. 가시광선과 적외선으로 촬영한 경복궁 교태전 부벽화도 처음 나왔다. 먼저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동영상을 훑어보고 전시장에 가시길.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 검진하는 날’ ‘조선시대 연적의 내부 구조와 물길’ 등 짤막한 영상이 흥미진진하다. 11월 15일까지.
백자 투각 구름 용무늬 연적.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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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투각 구름 용무늬 연적 내부.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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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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