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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죽음을 통해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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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가키 시즈오카대 교수의 '생명 곁에 앉아 있는 죽음'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무릇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는다. 불멸(不滅)의 삶이나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생명체는 없다. 나고 살고, 낳고 죽는다. 생(生)의 바통은 자자손손(子子孫孫) 그렇게 세대로 이어진다.

신간 '생명 곁에 앉아 있는 죽음'은 식물학자가 자연에서 길어 올린 삶과 죽음에 대한 영감이라는 점에서 이채롭다. 일본의 농업 생태학자이자 잡초 과학자, 농업 연구자인 이나가키 히데히로(52) 박사는 자연의 뭉클한 순간들을 구체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들려준다. 식물학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본 인문학적 생사학(生死學)이랄까. 원저의 제목은 '죽음의 모양'이다.

"'죽음'은 38억 년에 걸친 생명체의 역사 속에서 생물 자신이 만들어낸 위대한 발명이다. 생명체는 원래의 개체에서 유전 정보를 가져와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방법을 짜냈다. 이것이 수컷과 암컷이라는 성(性)이다. 수컷과 암컷이라는 짜임새를 만듦과 동시에, 생물은 '죽음'이라는 시스템을 고안해낸 것이다."

책은 바다, 강, 육지, 하늘에 서식하는 32종 생물들이 자연에서 순환하는 과정을 그린다. 곤충 13종, 해양 생물 6종, 포유류 8종, 떠살이생물 2종, 조류·파충류·양서류 각 1종씩 다루며 그 생활 방식과 진화 과정, 번식과 죽음 과정을 살핀다. 불교 용어를 빌리자면 윤회(輪廻)라고 하겠다.

연합뉴스

매미
[살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누구나 삶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해본다. 책에서, 예술 작품에서, 매체에서 타인의 죽음을 지켜보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때로는 살아갈 용기와 위로를 받고, 허무함도 받아들인다. 자연 생태계는 삶과 죽음이 치열하게 이뤄지는 현장이다.

저자는 다음 세대를 위한 죽음의 방식이 곧 번식의 실체임을 알려준다. 더불어 평생 생태계를 탐색해온 연구자만이 해낼 수 있는 세밀한 묘사로 생물의 마지막 순간들을 감동적으로 전한다. 그중 몇 사례를 살펴보자.

여름 한 철에 세상을 요란하게 울려대는 매미는 땅속에서 무려 일곱 해를 굼벵이로 지냈다. 그 기나긴 애벌레 시기를 보낸 뒤 어른벌레로 지상에 나와 고작 일 주일가량 목숨을 부지한 채 큰 소리로 울며 암매미를 불러들인다. 짝짓기와 산란을 짧은 시간에 마치고 장엄하게 삶을 마감한다.

사마귀 수컷은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동종 포식을 당하면서도 기꺼이 짝짓기한다. 남자를 쥐고 흔들다 끝내 잡아먹는 악녀라는 뜻의 속어인 '사마귀 여편네'는 이런 사마귀의 생태를 빗댄 말이다. 수컷은 목숨 잃기를 마다하지 않고 오로지 번식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자식에게 스스로 풍부한 영양원이 되는 거다.

강에서 태어난 연어는 치어 시절에 바다로 내려가 수년간 산 뒤 성숙한 어른이 되면 자신이 태어난 '어머니'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마지막 여행을 한다. 연어에겐 고향 가는 길이 저승으로 가는 황천길이다. 그 이유는 금쪽같이 아까운 알들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장벽처럼 막아선 댐과 보 때문에 숱한 연어가 귀향도 못 한 채 중도에서 처절히 죽어가는 사례도 있다.

이밖에 수개월 동안 금식하며 알을 지키고 부화를 바라보다가 시나브로 죽어가는 어미 문어, 부화한 뒤 배고픈 자식을 위해 제 몸을 먹잇감으로 기꺼이 바치는 어미 집게벌레 등 애수 가득한 이야기들이 눈물겹다.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은 추천사에서 "모든 생명은 죽는다. 짝짓기를 하자마자 '다 이루었다'는 자세로 장렬하게 죽든지 늙어서 굶주리다 잡아먹힌다. 이게 자연"이라며 "저자는 다양한 생명의 사례로 '죽음'이란 다음 세대를 위해 생태계에 자리를 비워주는 '진화의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고 말한다.

시즈오카대 농학부 교수인 저자는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등 관련서도 냈다.

노만수 옮김. 살림. 236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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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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