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했던 北 조성길 대사 작년 입국
2018년 11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잠적했다가 지난해 7월 한국행을 택한 것으로 알려진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 대사대리. 1997년 고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 비서 이후 북한 최고위 인사가 한국에 온 것이다. 동아일보DB |
2018년 11월 이탈리아에서 잠적한 뒤 미국 등 제3국 망명설이 나왔던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예상을 뒤엎고 한국행을 택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을 놓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정을 알고 있는 대북 소식통은 “그가 아내와 함께 한국으로 온 것으로 안다”며 “조 전 대사대리는 미국에 가지 않고 스위스 등 망명을 타진하다 한국에 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전직 국가정보원 간부 등 대북 전문가들은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에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대북 소식통은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조 전 대사대리와 같은 고위급 탈북자가 한국에 올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고 봤다”고 말했다. 조 전 대사대리가 한국에 온 사실이 공개될 경우 북한이 강력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부가 남북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감수하고서라도 그의 한국행을 받아들일 이유가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조 전 대사대리의 지난해 7월 한국행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북한이 대남 비난을 재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북한군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 씨(47) 피살 사건으로 북한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조 전 대사대리의 입국 사실을 결과적으로 공개한 정부에 책임을 물으며 비난할 수 있다는 것. 현재 국민의힘 의원인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2016년 한국에 망명할 때도 북한은 태 전 공사 등에 대한 거친 비난을 쏟아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망명 사실 공개는 북한 입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악의적인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정부가 현재 마지막 남은 채널인 국정원-통일전선부 간 라인을 통해 북한에 해명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에서 근무했던 유성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망명 사실을 확인해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기획으로 데려온 것이 아니라 조 전 대사대리가 원해 온 것일 뿐이다. 우리가 이번 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이유가 없다’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 전 대사대리는 잠적 이후인 지난해 1월만 해도 미국 망명설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도미가 실현되지 않은 걸 보면 미국이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협상에 영향을 미칠 것을 의식해 조 전 대사대리의 망명을 받아들이기를 꺼렸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는 “미국은 이익이 되면 (탈북자를) 다 받는다”며 “이 때문에 미국 망명이 안 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홍 실장은 “북한이 여전히 유럽에 대사관을 상당수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에 망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 의원이 지난해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 망명을 촉구하는 공개 편지를 쓴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대북 소식통들은 전했다. 당시 태 의원은 “친구야, 한국은 나나 자네가 자기가 이루려던 바를 이룰 수 있는 곳”이라며 “자네도 한국에서 자서전을 쓰면 대박 날 것”이라고 했다.
조 전 대사대리는 아버지와 장인 모두 외교관 출신인 집안에서 태어나 평양외국어대를 졸업한 엘리트층으로 분류된다. 1999년경 외무성 근무를 시작한 경력 20년의 외교관으로 2015년 이탈리아에 3등 서기관으로 부임해 2017년 1등 서기관으로 승진했고,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이탈리아가 당시 대사를 추방하자 대사대리를 맡았다. 그는 유럽 지역에서 김 위원장의 사치품을 밀수 공급하는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잠적에 반북단체인 ‘자유조선’이 개입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기재 record@donga.com·권오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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