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자위권 인정한 수사 결과 뒤집어
1996년 8월26일 수의를 입고 선고 공판을 기다리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한겨레>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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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신군부가 저지른 광주에서의 학살행위에 면죄부를 줬던 검찰이 이를 뒤집는 판단을 내렸다. 사자명예훼손사건으로 기소된 전두환(89) 전 대통령에게 징역형을 구형하며 5·18 헬기사격이 실제 있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5·18단체는 이번 검찰 구형이 5·18 진상규명의 시작점이라고 환영했다.
5일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전씨 사자명예훼손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전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이번 구형은 1995년 검찰 조사를 뒤집는 판단이다.
검찰은 1994년 5월 5·18 피해자의 고소·고발을 접수하고 같은 해 11월23일에서 1995년 7월 사이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관련자 269명을 조사했다. 하지만 12·12 군사반란은 기소유예, 5·18 학살 사건에는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에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당시 검찰은 1980년 5월21일 이후 계엄군의 발포는 ‘시위대의 위협적 공격에 대응한 자위권 차원의 발포’라는 계엄군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헬기사격 등은 제대로 수사하지도 않았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진행된 2차 조사도 전씨·노씨 등 신군부 처벌을 목적으로 했을 뿐 5·18 진상규명은 뒤로 밀려났다.
특히 이번 재판에서 쟁점이 됐던 민간인을 향한 헬기사격은 군 부대원 보호가 아닌 일방적 사살이기 때문에 신군부의 ‘자위권 보유’ 주장을 부정할 수 있는 사안인데, 검찰은 1995년 수사 결과를 뒤집고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피해자 쪽 법률대리인 김정호 변호사는 “1995년 검찰 조사는 증거 부족으로 헬기사격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그동안의 정부 차원 수사, 새로운 목격자 증언 등을 토대로 검찰이 사실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민병로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18 헬기사격 논란은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발족시킨 계기다. 강제수사권을 가진 검찰이 처음으로 5·18 진상을 조사하고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만 명백한 증거가 없어 5·18조사위에 과제를 남겼다”고 주장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저자인 이재의씨는 “헬기사격은 자위권 보유 논리를 한번에 깨뜨리는 것으로 군 명예와도 관련이 있다. 1995년 수사는 정치적 처벌이 목적이기 때문에 1988년 국회 광주청문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검찰 입장에서는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과거사에 대한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도 “전씨에 대한 검찰의 징역형 구형은 5·18 진상규명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다.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해 전씨가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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