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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P] 우리 국민 죽었는데 "몰랐다"…존재감 없는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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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를 통해서 알았다. 23일 낮이었던 것 같다."

지난달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같은달 22일 북한군이 우리 공무원을 피격한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냐는 질의에 이렇게 답했다. 강 장관은 이 사건 직후 종전선언을 언급한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이 방영된 데 대해서도 "연설 나가는 당시까지 외교부로서는 첩보 분석에 참여를 안 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남북관계와 안보 부문에 있어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외교부 수장이 완전히 배제돼 있었다는 얘기다.

하반기 들어 주요한 외교안보 사안이 쏟아지고 있지만 외교부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여러 국제회의 일정, 미 대선을 앞두고 미북 대화의 불씨를 살려보기 위한 물밑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뚜렷한 결과물이 없다. 한미·한중·한일 관계 등 주요국과의 양자 이슈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부에서 일어난 주뉴질랜드 대사관 성추행 사건 등으로 발목이 잡힌 모양새다.

외교부는 다음달 미 대선을 앞두고 '옥토버 서프라이즈(10월 미북 정상회담 깜짝 개최)'를 만들기 위해 미북 간 대화의 불씨를 지피는 중이었다. 지난달 초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의 방미에 이어 중순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방미, 오는 7일로 예정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한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물밑 움직임을 보여줬다. 통일부 등도 남북협력 사업 추진 의지를 적극적으로 나타내며 힘을 보탰다. 정권 내부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여부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가운데 선거 전에 미북 대화 모멘텀을 살려두지 않으면 향후 대화 재개 가능성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달 22일 초유의 우리 공무원 피격 사살 사건이 발생하며 남북관계가 급격히 경색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북측이 보내온 통지문에 담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과를 부각하며 사태를 진정시키려 하고 있으나 여론의 부담이 상당한 상황이다. 여기에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소식은 '옥토버 서프라이즈' 가능성에 대못을 박았다. 대통령 선거일(11월 3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치료·격리 일정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물건너간 사안이 됐다.

다른 한미 동맹 이슈도 특별히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이후 6개월째 공전 중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뚜렷한 모멘텀이 없어 이대로 해를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11월 미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당분간은 백악관 내부 정리와 국내 정치 등에 신경을 쏟을 공산이 높다. 오히려 최근 쿼드 플러스나 경제번영네트워크(EPN) 등 반(反)중국 연대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미국의 요구가 노골화되는 상황을 맞았다. 7일 방한하는 폼페이오 장관도 이를 강조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를 견제하기 위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도 방한 일정을 조율 중이란 소식이 전해졌다. 자칫하다 외교부가 미중 양국의 요구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 하반기 국제회의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외교부의 활약이 기대됐으나 예상보다 성과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지난달 말 열린 유엔총회에선 공무원 총격 사건이 일어난지 수 시간 뒤였음에도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 연설이 그대로 방영되며 '국제적 망신'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이 예정돼 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전부 화상회의 형식으로 개최될 것으로 보인다. 사안에 밝은 한 외교 당국자는 "화상회의는 국가간 협의가 어려운 관계로 공동성명문 등을 만들기 힘들다"며 "코로나19가 대면외교에 상당한 어려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한중·한일 관계도 연내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다. 외교부가 주요 과제로 추진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은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아 실질적으로 어려워진 상황이다. 11월말이나 12월께 서울 개최로 추진되고 있는 한중일 정상회의는 '2인자' 리커창 총리가 오기 때문에 시 주석까지 연달아 방한하는 걸 바라긴 어렵다.

이 와중에 지난달 새로 취임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한중일 정상회담 참석에 '조건'을 걸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일본 교도통신은 외무성 고위 간부를 인용해 한국이 압류한 일본 강제징용 기업 자산을 매각하지 않는다고 약속해야 스가 총리가 방한할 것이라고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풀어야 할 외교안보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외교부는 적절치 못한 처신으로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 2017년 주뉴질랜드 대사관에서 한국 외교관이 현지 남성 직원을 성추행했음에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최근 뉴질랜드 정부의 항의를 받고 있다. 지난달 최종건 차관의 방미 때는 북미국장이 동행한 걸 두고 한 언론이 '왕차관 논란'이라 보도하자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해명하다 "불필요한 해명은 그만두고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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