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한국의 전통 무예 택견에 인생을 건 프랑스 사나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브레시 프랑스택견협회장 “많은 제자들 기합소리 듣고파”

지난 26일 파리 남서쪽 외곽 도시 몽티니르브르토뇌에 있는 공연장. ‘파리서울78’이란 민간단체가 추석을 즐기자며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인근의 프랑스인 80여 명을 불러모았다. 무대에 흰색 도포에 하늘색 쾌자를 걸쳐 한국의 전통 복장을 한 프랑스 사내가 뛰어 올랐다. 2010년 프랑스택견협회(CFTK)를 설립해 10년째 회장을 맡으며 ‘유럽의 택견 전도사’로 활동하는 장세바스티앙 브레시(41)씨다.

흥겨운 사물놀이 음악에 맞춰 그가 미끈하게 택견의 품 밟기 동작을 선보이자 박수가 터져나왔다. 택견 특유의 “이크”라는 기합 소리도 울려 퍼졌다.

브레시씨는 택견에 미쳐 택견에 인생을 건 사나이다. 그는 “열일곱 살 때 파리 시내 한식당에 갔다가 한글이 예쁘고 한국말이 아름답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20대 초반에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한 그는 2004년 가방 하나만 들고 무작정 서울에 갔다.

외국어 과외를 뛰고, 외국인 단역 배우로 활동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드라마 ‘천국의 계단’, 가수 자우림 뮤직비디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얼굴을 내밀었다.

조선일보

브레시 프랑스택견협회 회장이 발차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손진석 특파원


한국 문화에 깊숙이 빠진 브레시씨는 전통 무예를 배워보고 싶었다. 해동검도, 태권도를 익혔지만 다소 전투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택견 동작을 접하고 “와 이거다”라고 했다. 동작구에 있는 대한택견전수관에서 문영철 관장으로부터 택견을 배웠다.

“공격에 무게를 두는 태권도보다 동작이 부드럽고 우아했어요. 상대방이 다치지 않게 밀어차는 배려의 정신도 매력적이었죠. 택견은 3박자 춤의 느낌도 있으니까 함께 어울리는 재미도 있어요. 한국적인 몸짓이죠.”

브레시씨는 택견을 유럽에 보급하겠다고 마음먹고 6년 만인 2010년 프랑스로 돌아와 프랑스택견협회를 설립했다. 이후 100여 명의 프랑스인이 그의 문하에서 택견을 배웠다. 파리의 한국문화원에서 택견 강사로 활동했다. 프랑스 각지에 음악축제나 무술공연이 있으면 무대에 올라 택견 시범을 보인 게 40차례가 넘는다.

택견을 추가로 배우고 싶어한 마르틴 자메크닉 체코태권도협회 회장이 파리에 와서 그를 스승으로 모시기도 했다. 유럽에서 브레시씨 외에는 택견을 제대로 전수받은 이가 없기 때문이다.

2017년 브레시씨는 프랑스에 온 한국의 택견 시연단을 마중 나갔다가 택견 사범인 황혜진(36)씨를 만나 구애 작전을 폈다. 이듬해 ‘한·불 택견 커플’은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지금은 파리 근교에 살고 있다.

남편은 아내의 성(姓)을 빌려 ‘황세바’라는 한국 이름을 지었다. 이제는 부부가 함께 택견 전파를 하고 있다. 원래 파리에서 체육관을 대관해 택견을 가르쳤지만 코로나 사태 때문에 요즘은 화상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선일보

브레시 프랑스택견협회 회장(맨 오른쪽)과 부인 황혜진씨 및 브레시 회장으로부터 택견을 배우는 프랑스인들/프랑스택견협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브레시씨는 미혼일 때는 프랑스택견협회 회장 일만 했다. 수강생들이 협회에 내는 소액의 수업료는 거의 다 체육관 대관료로 쓰이기 때문에 그의 수입은 변변치 않았다. 황씨와 가정을 꾸린 이후에는 생계 유지를 위해 프랑스 내 외국인 커플을 대상으로 하는 웨딩 플래너 일을 병행하고 있다. 황씨는 “남편의 택견에 대한 열정은 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며 “정말 악착같이 택견에 매달려 산다”고 했다.

조선일보

브레시씨와 부인 황혜진씨의 택견 발차기 모습/프랑스택견협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브레시씨에게 인생의 목표를 물었다. “힘닿는 데까지 많은 제자를 길러내서 그 제자들이 다시 제자를 만드는 식으로 유럽에서 택견의 기합소리가 힘차게 울리게 하는 것이죠.”

[몽티니르브르토뇌(프랑스)=손진석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