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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CCTV가 몇 개야” 감시가 불편한 이방인이 관찰한 한국의 코로나 100일 [화제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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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열병의 나날들
안드레스 솔라노 지음·이수정 옮김
시공사 | 184쪽 | 1만3000원

“새로운 확진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재벌가 상속인과 북한 미남 장병 간의 말도 안 되는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 이야기는 뒷전으로 밀렸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외국인이라면 적어도 한국에서 지낸 지 여러 해일 것이다.

저자는 한국인들에게 소설가 마르케스, 화가 보테로, 혹은 ‘커피의 나라’ 등으로 기억되는 콜롬비아에서 꽤 지명도 있는 작가다. 2007년 장편소설 <나를 구해줘, 조 루이스>로 데뷔한 뒤 한국전쟁 참전 콜롬비아 병사들 이야기를 담은 <네온의 묘지>, 콜롬비아 메데인 공장에서의 경험을 녹여낸 르포문학 <최저임금으로 살아가기> 등을 썼다. 한국 체류 경험을 일기 형식으로 담아낸 <한국에 삽니다>는 2016년 콜롬비아 소설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에 온 지 올해로 7년째다. 그는 한국인 아내 ‘수정’과 함께 서울 이태원에서 산다. 이 책도 일기 형식이다. 장르는 르포르타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첫 페이지는 “뚫렸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수정과 나는 침대에 누우며 말했다. 35세 여성이 들여온 그것이 이제 여기에도 있다.” 코로나19 첫 환자의 발생(1월20일)을 언급하는 장면이다. 그때부터 원고를 마무리한 4월 말까지, ‘코로나19 시대의 한국’을 관찰한 ‘100일의 기록’이다.

저자는 아무래도 ‘한국의 감시체계’가 불편한 눈치다. 그에게 곳곳의 폐쇄회로(CC)TV가 주는 불편함은 한국인들이 느끼는 그것보다 크다. 그는 “아침으로 먹을 단팥빵을 사기 위해” 모퉁이에 있는 편의점까지 가는 동안 “CCTV가 몇 개 있는지 세어보았다”고 말한다. 모두 네 개다. 어떤 CCTV에선 “옆으로 바싹 걸으면 단속 지역이니 불법으로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는 3000원짜리 빵 한 개를 사고 체크카드로 계산하면서 “이 정도의 현금도 갖고 다니지 않는 나 자신이 더욱 한국인다워졌다고 생각”한다. 지폐 한 장 없이 살 수 있는 나라! 저자가 보기에 그것은 확진자나 접촉자 소재 파악이 용이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사설탐정도 이토록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내지 못할 것”이라며 놀라워한다.

이방인의 눈으로 한국사회를 관찰하면서 견해와 감정이 슬쩍슬쩍 개입한다. 국민건강보험을 언급하면서 “다행히 한국 거주자는 대부분 혜택을 받고 있다. 구명조끼를 입고 배에 탑승한 것”라고 말한다. 우한 교민들을 태운 전세기가 도착할 무렵, 일부 시민들의 수용 반대 시위를 보며 “몇 해를 잠자던, 짐승같이 야만스러운 공포심이 깨어나는 것”을 느낀다.

이렇듯 코로나로 잠식된 우리 일상과 감정을 기록했다. 신천지발 집단감염, 약국 앞에 긴 줄을 만들던 공적 마스크 제도, 택배량 폭증과 새벽배송 중 계단에서 사망한 택배기사 등, 그동안 우리도 끊임없이 목격했거나 겪었던 일들이다. 책 앞뒤 표지에는 저자가 ‘이방인’이라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 있지만 책장을 넘기다보면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잊는다. 우리가 느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다. 마스크에 대한 저자의 언급은 이렇다. “지금 그가 슬픈지 기쁜지 알기가 무척 힘들다.” “바이러스는 우리의 표정을 흐리게 지워버렸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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