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유통과정 온도 유지 못해 폐기 백신 전체의 절반 수준"
국내 독감백신이 유통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돼 예방접종이 일시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배송의 난제가 부각되고 있다.
지난 10일 미국 ABC뉴스는 "화이자가 미국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백신 승인을 요청해 백신 개발 경쟁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배송하는 건 또 다른 문제로 추가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화이자가 개발하는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영하 94도를 유지해야하는데 배송은 물론 일반 병원에 그만한 시설을 갖춘 곳이 드물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국내 독감백신 상온 노출 사태는 코로나19 백신의 대량 생산 못지 않게 ‘콜드체인’(저온 유통) 기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22일 오후 경기 김포시 고촌읍에 위치한 신성약품 본사의 모습. 지난 21일 정부는 신성약품의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유통 과정에서 냉장 온도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았다는 신고를 받아 독감 백신 무료 접종을 일시 중단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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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중국 시노팜, 시노벡이 개발하는 코로나19 백신인 불활성화 바이러스의 경우 효력을 유지하기 위한 적정 보관 냉장 유통 온도는 2~8도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아스트라제네카가 만드는 재조합 유전자 벡터 방식의 경우는 아직 이에 대한 기준이 없지만, 에볼라, 콜레라, 인플루엔자, 폐렴구균, 로타바이러스, 인유두종바이러스, B형 간염 등은 절대 냉동 유통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단 한 차례의 냉동으로도 효능이 떨어진다"며 "특히 면역증강 보조제(어주번트)를 넣는 액체 백신은 아예 효능이 사라진다"며 주의를 촉구했다.
백신이 적절한 효과를 내는 보관 온도는 백신마다 다르다. WHO는 민감성에 따라 백신을 A∼F까지 6개 그룹으로 나누고 있다. 먹는 소아마비 백신은 온도 변화에 가장 잘 견디는 A그룹에, 인플루엔자도 비교적 온도 내성이 강한 B그룹에 속한다. 반면 B형 간염이나 폐렴구균 백신은 온도에 매우 민감한 F그룹에, 일본뇌염 역시 상당히 민감한 E그룹에 속한다. 그 외에 빛에 민감한 홍역이나 BCG 등 일부 백신의 경우 빛이 통과하지 않는 어두운 시약병에 담아 유통해야 한다.
이 중 독일 바이오엔테크와 화이자가 공동개발하는 핵산(mRNA)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의 경우는 영하 94도, 미국 모더나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은 영하 20도에서 보관돼야한다. RNA 자체도 불안정하지만 함께 들어가는 보조제가 불안정해 매우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한다. 바이러스가 단백질 등 생체물질을 이용하는 백신은 온도에 민감해서 아무리 효율이 높은 백신이라도 유통과정에서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효능이 사라진다. WHO에 따르면 유통과정 중 온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해 사용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백신이 최대 50%에 육박한다.
제롬김 국제백신연구소(IVI) 사무총장은 "초저온 환경이 필요한 새로운 핵산 백신은 기존의 냉장 위주 백신 유통망과 다른 유통망이 필요하다"며 "영하 20도나 영하 70도의 냉동유통 시설을 구축하지 못하는 곳에서는 백신 사용이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경우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유통 과정을 염두에 두고 상온 보관이 가능한 형태의 백신을 연구하는 사례도 있다. 중국군사의과학원과 생명공학기업 아보젠 바이오는 4~25도의 상온에서 일주일 이상 보관해도 효능이 떨어지지 않는 새로운 핵산 백신을 개발했다. 국제학술지 ‘셀’에 따르면 연구팀은 논문에서 "온도에 안정적인 백신이 글로벌 백신 공급 접근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전효진 기자(oliv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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