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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인-잇] 코로나 우울증, '식물'을 처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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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규│입사 21년 차 직장인. 실제 경험을 녹여낸 회사 보직자 애환을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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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동료들과의 소주 한 잔은 나 같은 직장인들에게 소중한 낙이다. 술잔을 부딪치며 웃고 떠들다가 자리가 끝날 즘에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다시 삼삼오오 모여 당구장 혹은 스크린 골프장으로 가는 과정 자체가 만남의 즐거움을 배가 시켜 준다. 그런데 그 즐거움을 상당 기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주말도 퇴근 후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코로나 때문에 종교활동, 취미생활, 경조사 참석, 잠깐 여행 등 소소한 즐거움을 가질 수가 없으니 말이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직장인에게 있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여름 휴가도 올해는 망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난 의욕이 떨어지고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혹시 이거...코로나 블루? 그런 것 같다. 퇴근 후 혹은 주말에 자유롭게 만남을 즐기며 살다가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교적 만남, 활동적 취미생활을 강제로 단절해야 했으니 누구라도 금단증세 같은 우울증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직장인들은 주 중에 하루 종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터에서 일한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스스로를 보상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여 퇴근 후 혹은 주말에 동료들을 만나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도 못 가고 저기도 못 가고 집에만 있어야 하니 생기가 사라질 수밖에. (물론 그 '정도'에 있어서는 생계를 위협받아 코로나 불면증에 시달리는 자영업자 같은 많은 분들과 비교 자체를 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2주 넘게 내가 살고 있는 모양은 대체로 '집안에서 혼자' 살아서 마치 깜깜한 저녁 대초원에 덩그러니 있는 것 같았다. 매우 적적하고 지루한 저녁의 연속이다. 이렇게 며칠을 맥없이 집에서 심심한 걸음으로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거실 한 공간을 장식하고 있는 화초들을 보았다. 우리 집에는 화초들이 몇 개 없지만 한곳에 모여 있기 때문에 거기에 서서 그것들을 몰두해서 보다 보니 나는 마치 조그만 초원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우리 아이와 같이 성장한 이름 모를 나무(우리 집 보물이다), 새 아파트 이사 기념으로 샀다가 이제는 훌쩍 커버린 역시 이름 모를 식물, 영전한 임원 사무실 정리하다 얻은 난,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때 키웠던 홍콩 야자수(지금은 내가 키운다), 다육이 하나, 어머니 댁에서 가져온 콩고, 그리고 최근 선물 받은 몬스테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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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화초들, 마치 조그만 초원에 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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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신기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이름 모를 나무를 담고 있는 화분 안에 전에는 없었던 아기 선인장이 보였다. 그 선인장은 예전에 우리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선인장과 똑같은 종이었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여기에 다시 새 생명을 뿌리내렸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잘려진 행운목이 크고 있는 저기 세숫대야 같이 생긴 항아리 속 나무 가지도 그렇다. 그 나무 가지는 이름 모를 나무가 너무 지저분해져서 일부 가지를 정리하기 위해 이파리가 풍성한 가지 하나를 꺾은 것이다. 그런데 당시 그것을 차마 바로 버리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라고 그 항아리에 잠시 넣어 둔 것인데, 놀랍게도 그곳에서 뿌리를 내어 생명을 유지하는 것 아닌가.

홍콩 야자수도 그렇다. 통상 홍콩 야자수는 기둥 줄기를 중심으로 좌우로 뻗어 난 가지에 이파리가 매우 풍성한데 이것은 그렇지 않다. 한때 병에 걸렸는지 밑에서부터 가지가 떨어져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약을 쳐서 병을 고치기는 했으나 살리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기둥 줄기 맨 위에 몇 개만 남아있던 이파리들이 무서운 생명력으로 새끼에 새끼를 치게 하더니 나무 끝에만 이파리가 풍성한 야자나무 같은 모양으로 결국 살아남았다. 게다가 희한하게도 맨 윗단의 한 줄기는 옆으로 한참 삐쳐 나와 마치 동떨어진 섬 같이 되고 말이다. 매우 특이한 모양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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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죽을 줄 알았는데 잘 살아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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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선을 돌려 그 옆에 있는 난도 보았다. 난은 키우기가 어려워서 우리 집에서 금방 죽어 나갈 줄 알았는데 그래도 7년 이상을 우리와 같이 했다. 사실 얘도 관리를 잘못해서 싱싱했던 잎이 다 썩어 몇 달 전에는 잎이 몇 개 남지 않았었는데 그때부터 집중적으로 돌보았더니 이제는 죽은 쭉정이 옆에서 새순이 올라와 제법 풍성해졌다. 다른 화초들도 비슷하다. 기존의 잎 주변에 마치 어린아이의 피부같이 보드랍고 순결해 보이는 연두색 이파리들이 피어나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기쁨으로 보고 만지고 쓰다듬어보았고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과 신비함을 느끼면서 퇴근 후 어떤 교제보다도 더 나은 즐거움을 맛보았다.

최근 나의 집에서 혼자 놀기 경험에 의할 것 같으면 가장 감미롭고 다정한 교제, 가장 순수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교제는 거실에 있는 자연물과의 만남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실 돌이켜 보면 퇴근 후 교제에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되던 여러 가지 들은 이점이 대단치 않은 것 이어서 지금은 그것을 하지 못해서 '심심하다, 우울하다, 외롭다'라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연푸른 잎새, 솟아난 작은 생명 하나하나가 친화감으로 부풀어 올라 나를 친구처럼 대해주고 있다. 나는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이 상황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황량하고 쓸쓸한 감정 대신 이 친구들을 보며 나와 친근한 어떤 것이 존재함을 분명히 느꼈다. 나는 회사 동료, 단골 술집, 당구장에서 느꼈던 어울림의 즐거움이 반드시 그 사람들, 그 곳이 아니더라도 집에서 혼자 그 정도의 좋음, 아니 그 이상을 맛 볼 수 있음을 분명히 깨달았다.

물론 사람과의 만남은 즐겁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과 같이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곳에 있어도 고독과 외로움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너무 오래 붙어 있어서 서로에게 새로운 가치를 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자신이라는 저 '신내 나는 김치'를 서로에게 맛 보이는 게 다다. 고독과 외로움은, 소로우의 말처럼, 한 사람과 그의 동료들 사이에 놓인 거리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되고 있다. 집에서 혼자 놀기에 지쳐서 (혹은 집 환경이 여의치 않아서) 단속이 없는 곳으로 여기저기 흩어진 후 다시 응집하여 기분 전환을 꾀하는 분들이 많다는데 이러할 때 잠시 서로에게 신맛만 주는 만남을 멈추고 각자의 공간에서 저마다 내면의 정서에 좋은 것들을 찾아 그것에 몰두해 보면 어떨까 한다. 코로나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효과가 있을 것으로 믿고 자신 있게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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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인잇 #김창규 #결국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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