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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이재명 지사 대법원 판결

선명성 높이되 충돌 피한다…친문을 대하는 이재명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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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지사가 전날(6일) 쓴 페이스북 글 중엔 의미심장한 대목이 있다.

“일부 보수언론과 기득 경제인 및 관료들이 이자율 10% 이하는 ‘대출감소로 저신용자들의 자금조달이 어렵고, 이들이 불법고리사채 시장에 내몰린다’며 저의 이자제한 강화 제안을 비난하고 있지만, 이는 고리대를 옹호하는 궤변이자 억지주장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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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지사.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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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발언이 정치권의 이목을 끈 이유는 이 지사가 ‘친문(친문재인)’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지사가 “궤변이자 억지주장”이라고 공격한 이자제한법 반대 논리는 공교롭게 친문 성향의 전해철·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것이기도 하다. 두 의원은 지난달 페이스북을 통해 “최고이자율을 10%로 내리면 제도권 금융기관의 신규대출이 막혀 저신용자들이 불법 사금융에 내몰리게 된다”는 취지로 이 지사의 주장에 반대했다.

다만 이 지사는 ‘궤변’의 주체로 ‘일부 보수언론과 기득 경제인 및 관료들’만 언급했을 뿐 같은 당 정치인을 거명하진 않았다. 이를 두고 한 여권 관계자는 “코로나19 2차 재난지원금을 갖고 보편을 주장하던 그가 선별로 방향을 잡은 친문 주류와 대립하는 것처럼 비친 점을 의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전날 새벽 정부·여당의 선별지원 방침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나아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제 눈에는 뚜렷이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러다 같은 날 오후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선별 지급 방침이 확정된 뒤엔 “저 역시 정부의 일원이자 당의 당원으로서 정부·여당의 최종 결정에 성실히 따를 것이다. 이는 변함없는 저의 충정”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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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6일 새벽에 쓴 글. [페이스북 캡처]


이 지사는 고비 때마다 친문으로 대변되는 여권 주류와는 다른 견해를 펴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대세가 친문쪽으로 기울면 자신의 견해와 다른 결정을 대체로 수용해 왔다. 내부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게 하면서도 자신의 선명성은 잃지 않는, 이재명식 ‘치고 빠지기’ 전략이다.

이 지사는 지난 7월 2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장사꾼도 신뢰를 유지하려고 손실을 감수한다”며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무공천을 주장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당 대표 선거 레이스 중이던 이낙연 대표 등 주류에선 신중론을 제기하던 시기였다. 논란이 커지자 이 지사는 이틀 만에 페이스북에 “무공천을 주장한 게 아니라 내 의견을 말했을 뿐”이라고 진화했다. 그러면서 “그것은 당원 의견 수렴을 통해 당 지도부가 결정할 일이고 저는 당원의 한 사람으로 투표에 참여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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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8일 양정철 당시 민주당 민주연구원장, 김경수 경남지사, 이재명 경기지사가 경기도 수원에서 만찬 회동을 갖고 건배를 하고 있다. [민주연구원=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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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4·15 총선을 앞두고 비례연합정당 참여 여부를 고심하던 지난 3월엔 “꼼수를 비난하다 꼼수에 대응하는 같은 꼼수를 쓰면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3월 9일 페이스북)며 공개 반대했다. 그러나 같은 달 13일 전 당원 투표에서 찬성이 74.1%로 집계된 뒤에는 “당론이 정해진 이상 당원으로서 흔쾌히 민주당의 당론을 따르고 존중한다”(3월 20일 페이스북)고 승복했다.

이 지사의 이런 모습을 두고 정치권에선 이 지사가 처한 정치적 환경의 한계를 꼽는 이들이 많다. 이 지사는 지난 19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반(反)문재인 연대의 선봉에 섰다 친문 성향 당원들의 뭇매를 맞았다. 당시 TV토론 때 질문에 답변하려는 문재인 후보를 이 지사가 “예, 아니오로 대답하라”고 몰아세운 영상은 친문 당원 사이에서 지금도 회자된다. 그만큼 문 대통령 지지자와 이 지사 지지자 사이 갈등의 골이 깊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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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1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왼쪽) 당시 성남시장과 문재인 당시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마포구 상암MBC에서 진행한 '100분 토론' 녹화 스튜디오에서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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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서려면 당내 경선부터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기지사 취임 후 친노·친문 진영의 대부격인 이해찬 전 대표의 측근(이화영)이나 ‘부산 친문’ 지역정치인(이재강)을 평화부지사로 기용한 것을 두고 친문과 화해를 시도하는 것이란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8·29 전당대회 때 이 지사가 직·간접적으로 응원했던 후보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신 사실이 방증하듯, 친문이 주류인 당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그에게 대선 경선은 가시밭길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의 한 의원은 “어차피 이 지사가 친문을 끌어안기란 불가능하다. 큰 사고 없이 높은 여론 지지를 받는 것만이 살길”이라며 “당원들은 최후의 순간엔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도 “이 지사가 친문에 일부러 잘 보일 이유는 없다”며 “1차 재난지원금 때처럼 다소 과격해 보이는 그의 정책을 유권자가 체감할 때 그의 본선 경쟁력은 자연스레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친문과의 전면전은 회피하면서도 주요 이슈 때마다 친문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방식이 이 지사의 대선 전략이 될 것이란 얘기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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