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의 역사·균형의 시대·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권위주의는 나쁘지만, 권위를 회피하는 것도 나쁘다."
육아, 교육, 정치의 실패를 방증하는 사례들이 쌓여간다. 각종 육아·교육 지원 제도와 기술이 다양하여졌음에도 부모와 교사의 번아웃은 줄지 않고, 과잉행동장애 또는 품행장애를 진단받는 소아·청소년과 학생들로부터 괴롭힘과 폭력을 당하는 교사의 수가 증가한다.
벨기에의 임상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저자는 최근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종다양한 심리·사회적 징후를 꿰뚫는 개념으로 '권위'를 제시한다. 수많은 문제의 배경에는 공통으로 '권위의 부재'라는 원인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권위란 무엇일까? 저자는 권위가 '권위주의'와 다르고, '권력(power)'과도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권위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주요한 기능에 대해 "권위란 인간관계를 규제하는 기능을 한다"는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려 설명한다.
사람은 부모, 자녀, 또래, 동료, 이성 등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내'가 된다. 그렇기에 권위는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고 더 나은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근간임은 물론이다. 권위주의적 질서나 권력에만 동조하는 '어른'은 말할 것도 없지만, 부모·교사·상사·정치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꼰대'로 비치는 게 두려워 권위자가 되기를 회피하는 것 역시 문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반비. 344쪽. 1만8천원.
▲ 빨강의 역사 = 미셸 파스투로 지음. 고선일 옮김.
빨강은 색의 원형이다. 그래서 지난 수천 년 동안 다른 색들에 비해 우위성을 갖고 있었다.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는 주거 공간을 비롯해 가구류와 집기, 직물과 의복, 장신구와 보석에 이르기까지 빨강은 단연 압권이었다. 각종 공연이나 제의에서도 권력 그리고 신성함과 연관됐다.
하지만 중세 말에 그 위상은 급속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색으로 급부상한 파랑과 경쟁해야 했고, 궁정 의복에서 사치와 우아함을 표상하는 검정의 공세에도 맞서야 했다. 특히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을 계기로 빨강은 정숙하지 못하며 비도덕적이고 퇴폐적인 색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중세 문장학의 대가이자 색채 분야의 국제적 전문가로 꼽히는 저자는 대담한 컬러인 빨강의 역사를 탐색한다. '원초의 색'으로 여겨지던 원시시대부터 고대 말까지, '선호하는 색'으로 간주한 6세기에서 14세기까지, '수상한 색'으로 의심받던 14세기에서 17세기까지, '위험한 색'으로 추락한 18세기에서 21세기까지 차례로 살펴본다.
빨강은 더는 선호하는 색이 아니지만, 오늘도 자신만의 역할을 일상에서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빨간색 신호등이 말해주듯이 경고와 규정, 금지의 역할을 하며, 축하 행사나 기념행사에서는 찬양과 긍정의 신호로 여겨진다. 공연을 시작할 땐 빨간색 커튼이 위로 올라가거나 양옆으로 벌어지고, 임명식이나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은 붉은색 리본을 자른다. 20세기 후반부터는 공산주의의 상징색이 되기도 했다.
이번 책은 출판사가 지난 2000년부터 펴내온 '파랑의 역사', '검정의 역사', '녹색의 역사'에 이은 네 번째 책으로, 다섯 번째 연작 '노랑의 역사'도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다.
미술문화. 368쪽. 1만8천원.
▲ 균형의 시대 = 서상목 지음.
1990년대 후반에 발생한 외환위기 이후 갖가지 사회적 문제점이 생겨났다. 경제성장 속도가 둔화하고 성장 잠재력도 약화했다.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사회적 갈등도 심해졌다. 초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빠르게 깊어지는 가운데 복지재정 역시 위기에 처했다. 여기다 코로나19까지 발생해 사회 전체를 강타하고 있다. 갖가지 사건과 사고가 들끓는 시대에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야 할까?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삶은 무엇일까?
정책 전문가로 지난 50년 동안 경제와 복지 분야에서 연구 활동과 정책 만들기에 앞장서 온 저자는 노인 빈곤과 자살을 방치하는 한국 사회를 대표적인 복지 사각지대로 정의한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낱낱이 파헤치고, 비극적 현실이 널리 알려졌음에도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정부나 정치권의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세계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연구와 정책 자문 활동을 했던 저자는 1988년 정계에 입문해 국회의원을 지낸 데 이어 1994년에는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한 바 있다. 그리고 2000년 정계를 은퇴한 뒤 대학에서 후진 양성에 힘썼고, 지금은 민간 사회복지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이번 책은 2040의 분노, 노인 빈곤, 좌우 갈등, 코로나19 사태 등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 현상을 설명하는 '불균형의 시대를 넘어'를 비롯해 시장원리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시장을 이길 정부는 없다', 사회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지속가능한 복지국가의 길', 경제적 가치 창출에 더해 사회적 가치 창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사회적 가치가 우선인 시대' 등 모두 4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담북스. 320쪽. 1만5천원.
▲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 김탁환 지음.
작가 김탁환 씨는 거친 세상 속에 놓인 다양한 인간 군상, 사회와 인간이 만들어온 문제를 천착하며 소설을 써왔다. 그러던 중, 끊임없이 더 빨리 더 많은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자신 또한 글 쓰는 기계가 돼 있음을 자각한다.
어느덧 소설가로서 후반의 생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 결국 작업실을 벗어나 길 위를 걸었고,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질문을 품고서 지방 곳곳의 마을로 향했다. 그 발길이 가장 많이 닿은 마을이 전남 곡성이었다. 도시소설가인 김씨는 농부과학자인 이동현 씨를 만나 두 번째 인생 발아의 시간을 함께했다.
이런 만남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와 회생의 길을 담아낸 이번 신간은 작가가 마을을 샅샅이 어루만진 끝에 쓴 르포형 에세이로, 도시소설가가 마을소설가로 내디딘 첫 발자국이기도 하다. 씨앗이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다시 씨앗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빗대어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을 차례로 담아낸 이 책은 '발아', '모내기', '김매기', '추수', '파종' 등 5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농부 이씨가 땅과 동식물로부터 체득한 지혜는 많은 깨달음을 안겨준다. 일례로 모 사이의 거리를 보통 논보다 세 배 이상 띄고, 화학비료 대신 왕우렁이로 피를 제거하는 방식은 언뜻 비효율적인 듯 보이지만, 오히려 벼가 더 깊이 뿌리 내려 재해에도 강하게 살아남는다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더 많이, 더 빨리'를 외쳐온 대도시의 생활 방식, 삶과 사람 간의 거리를 근본적으로 돌아보는 지금 시점에 더욱 귀 기울이게 하는 대목이다.
해냄출판사. 328쪽. 1만6천800원.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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