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유로존 CPI -0.2%…2016년 5월 이후 첫 '마이너스'
근원인플레이션율 0.4%로 사상 최저…ECB 경기부양 압박 커져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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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유럽경제가 '물가의 덫'에 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얼어붙은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이 4년 만에 마이너스(-)로 떨어졌고, 장기적 물가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인플레이션율은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적극적인 통화정책에도 구조적으로 경기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유럽중앙은행(ECB)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유로존의 8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0.2% 하락한 것으로 집계돼 2016년 5월(-0.1%) 이후 4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타격에도 지난 5월 가까스로 플러스 상승률(0.1%)을 보인 유로존 CPI는 7월 0.4%까지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0% 아래로 추락했다. 이는 블룸버그가 조사한 전문가 예상치(0.2%)보다도 크게 하회한 것이다. 국가별로는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을 포함해 19개 유로존 국가 가운데 12개국의 8월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나타났다.
8월 물가 하락은 유가 약세와 여름철 의류 등 소매품 할인 등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CPI의 세부 항목을 살펴보면 식료품ㆍ주류 부문은 물가가 1.7% 상승했으나 에너지 부문은 7.8%나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반적으로 유럽 국가들은 가을 시즌을 앞두고 6~7월 중 의류 등을 대거 할인해 판매하는데 올해는 판매가 부진해 세일 기간을 8월까지 연장했다. 외신들은 일부 품목 세일이 영향을 줬다면서 9월에는 이런 요소가 사라지면서 물가가 소폭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등 지속적 수요 약세가 이어지는 만큼 물가 하방압력 가능성은 여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기 물가 흐름을 볼 수 있는 근원인플레이션율이 사상 최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유로존의 8월 근원인플레이션율은 0.4%로 집계돼 지난 7월(1.2%)에 비해 큰 폭으로 하락했고 2015년에 기록한 최저(0.6%) 수준을 밑돌았다. 가격이 급변하는 농산물이나 석유류 가격의 영향을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율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저물가 상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19 발(發)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적극적 통화정책을 펼치고 있는 ECB의 부담은 한층 커졌다. 마이너스금리와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통해 시장에 대규모 유동성을 투입했지만 효과가 크지 않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오는 10일 진행되는 ECB 통화정책회의에서 당초 2022년까지 1.3%로 물가상승률이 오를 것이라고 전망한 내용을 수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ECB가 최근 경제지표들을 살펴본 뒤 내년 6월까지 시행하기로 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긴급매입프로그램(PEPP)' 기간을 연장하거나 규모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필립 레인 EC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주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쇼크에 이어 다음 단계는 물가를 올리는 일이 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정책을 더 내놓을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다니엘라 오르도네즈 옥스포드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근원인플레이션율이 계속해서 떨어지면 ECB는 경기 부양을 위한 통화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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